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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와이북클럽 2월 발제문

월간와이북클럽 2월 발제문
차례
  1. 결혼과 정복 — 올리아나와 콩고
  2. 언어의 힘과 오역 — 놈모, 뱅갈라, 독나무 성경
  3. '프로그램'의 수출 — 민주주의, 기독교, 그리고 새 냄비
  4. 루스 메이의 죽음 — 불가능한 선택과 애도
  5. 세 자매의 출애굽 —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다
섹션 1

결혼과 정복 — 올리아나와 콩고

올리아나 프라이스는 각 챕터의 서두에서 독백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광신적 선교사 남편 네이선을 따라 콩고에 왔고,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었다. 네이선은 바탄 죽음의 행군의 유일한 생존자로, 전우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광적인 선교사로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 올리아나의 결혼은 곧 콩고의 식민 지배와 같은 구조로 그려진다 — 한쪽의 "계획"이 다른 쪽을 삼키는 것.

발췌 1-1

바탄의 유령 — 네이선이 만들어진 곳

[Book 3, p.244-247] 올리아나가 네이선의 전쟁 경험을 회상하며. 네이선은 코레히도르 섬에서 송환된 바탄 죽음의 행군 유일 생존자다.

프라이스 사병은 코레히도르 섬에서 송환되었다. 그러나 바탄의 전우들이 알던 사람 그리고 내 남편이었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관자놀이에 초승달 모양의 흉터를 갖고, 시력이 심각하게 떨어진 왼쪽 눈과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회의를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한 지휘관의 방심에 의한 실수였다. 역사에서는 작지만 그들의 목숨에서는 그리 작지 않았던 실수. 그들은 그 반도에 갇혀 굶주림과 공포에 떨다가 마침내 총검에 밀려 미지근한 논과 타는 듯한 열기를 통과해 북쪽으로 갔다. … 그것이 한 병사의 가슴을 영원히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딱딱한 구두 가죽처럼.

발췌 1-2

정복으로서의 결혼

[Book 3, p.246] 올리아나가 네이선과의 결혼 초기를 회상하며.

올리애너라는 소녀 또는 여인은 어디 있었을까? 네이선의 사명이 몸과 영혼을 삼켰다. 마치 강대국에게 점령당하듯. 틀림없이 외부에서 보면 나는 여전히 '나'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여전히 전쟁에 나갈 때의 그 청년과 똑같아 보이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내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네이선의 계획과 결합되었다. 그의 숭고한 '뜻'과 말이다. 정복은 이렇게 이뤄진다. 항상 한쪽 계획이 다른 계획보다 원대하다.

발췌 1-3

맨발의 신부, 콩고

[Book 3, p.250] 올리아나가 자신과 콩고를 동일시하며.

이것이 '이유'란다, 나의 짐승. 나는 날개를 잃었었어. 그걸 어떻게 되찾았는지는 묻지 말아주렴. 참기 힘든 이야기니까.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거짓 안심을 믿었단다. 남자들이 말하는 국가의 이익은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고 믿으면서. 우리는 모두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 결국 내 운명은 콩고와 함께 던져졌어. 가엾은 콩고. 콩고는 보석을 빼앗고 왕국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남자들, 그들의 맨발의 신부였단다.

발췌 1-4

독립이라는 외국어

[Book 5, p.467-468] 루스 메이의 죽음 이후, 올리아나가 왜 남편을 떠나지 못했는지 고백하며.

내가 왜 그렇게 오래 머물렀는지 너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이야기는 거의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네 작고 동그란 눈이 경멸어린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것을 느낀다. 너는 내 죄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공모? 충성? 망연자실?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죄는 부도덕에 의한 것일까, 무능력에 의한 것일까? 나는 로마가 불타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가진 물은 걸레질을 할 정도밖에 안 되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독립'은 복잡한 외국어다. 하나의 국가든 그저 일개 여자든 점령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적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정복', '자유', '민주주의', '이혼' 따위의 단어는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에는 그리고 빨래를 널어야 하는데 비가 올 것 같을 때에는 기본적으로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토론 주제
  1. 네이선의 전쟁 트라우마(바탄 죽음의 행군)는 그의 광신적 선교를 어떻게 설명해주는가? 이해할 수 있는가, 용서할 수 있는가?
  2. 올리아나의 결혼과 콩고의 식민 지배는 어떤 점에서 닮았는가? 이 비유가 과장이라고 느껴지는가, 아니면 정확한가?
  3. 올리아나의 죄는 "부도덕에 의한 것"인가, "무능력에 의한 것"인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는가?
  4. "로마가 불타는데 바닥을 닦았다" — 우리 삶에서 이런 순간이 있었는가?
섹션 2

언어의 힘과 오역 — 놈모, 뱅갈라, 독나무 성경

콩고 킬랑가 마을에서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다. "놈모(Nommo)"는 이름이 존재를 만드는 힘이고, 잘못된 이름은 세계의 질서를 깨뜨린다. 에이다는 넬슨에게서 이 세계관을 배우면서 자신이 쌍둥이(바자)라는 사실이 이곳에서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게 된다. 네이선 목사는 이 세계에서 언어를 끊임없이 오용하며, 매 설교를 "예수는 뱅갈라(독나무)다!"로 끝낸다. 소설의 제목 자체가 이 오역에서 나왔다.

발췌 2-1

놈모 — 이름이 존재를 만든다

[Book 3, p.258-259] 에이다가 넬슨에게서 놈모의 개념을 배우며. 에이다와 리아는 일란성 쌍둥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산다.

놈모는 모든 존재가 그 실체로서, 즉 남자는 남자로서, 나무는 나무로서, 동물은 동물로서 살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놈모'는 '단어' 또는 '말'이라는 뜻이다. 토끼는 '토끼', 즉 '음분들라'라고 부르기 때문에 토끼의 삶을 사는 것이다.

아이는 이름을 갖기 전까지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넬슨은 주장한다. 그런 얘길 들으니 나에 대한 수수께끼도 풀리는 것 같다. 내 쌍둥이 자매와 나는 일란성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의 씨에서 두 개의 다른 삶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수수께끼 말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에이다이고 그 애가 리아라는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다.

발췌 2-2

바자 — 쌍둥이라는 재앙

[Book 3, p.259-261] 에이다가 넬슨에게 자신이 쌍둥이라고 밝히자, 넬슨이 경악한다.

"바자를 낳은 여자는 아기들이 태어나면 숲으로 데려가 버려야 해. 가능한 한 빨리 데리고 가야 해. 그건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야."

넬슨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쌍둥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사회에 위험을 주는 요소였다.

"네 엄마가 너희들을 숲에 갖다 버리지 않았을 때 너희 마을은 어떻게 됐어?"

나는 내가 태어난 해를 생각해보고는 이렇게 썼다. "우린 전쟁에서 승리했어."

발췌 2-3

네이선의 언어적 재앙

[Book 3, p.263-264] 에이다가 아버지의 콩고어 실수들을 관찰한다.

콩고에서 놈모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나는 이제 깨닫는다. 이름을 잘못 붙이면 닭이 사람처럼 말을 할 수도 있다. 마체테가 일어나서 춤을 출 수도 있다. … '살해하다'라는 뜻의 '반디카'를 목사 양반처럼 빠르게 내뱉으면 '식물을 다듬다' 또는 '처녀성을 빼앗다'라는 의미가 된다. … 우리 부친이 변함없이 열을 올리는 '바티자'도 그렇다. 바티자는 혀를 말면서 발음하면 '침례'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겁주다'라는 뜻이다.

발췌 2-4

"뱅갈라" — 소설 제목의 열쇠

[Book 6-7, p.621] 리아가 수십 년이 지나 깨닫는 "뱅갈라"의 의미.

우리는 너무도 많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진 콩고 단어들 때문에 당황하곤 했다. '뱅갈라'는 '가장 귀중한', '가장 거슬리는' 그리고 '독나무'라는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아버지는 설교를 끝낼 때마다 "타타 그리스도는 뱅갈라!"라고 외치면서 그 하나의 단어로 당신의 설교를 매번 무너뜨린 셈이다.

토론 주제
  1. "이름이 존재를 만든다"는 놈모의 세계관과,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의 세계관은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닮았는가?
  2. 쌍둥이(바자)를 숲에 버려야 한다는 전통은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놈모의 논리 안에서는 일관성이 있다. 우리가 "야만적"이라고 느끼는 관습과 "문명적"이라고 느끼는 관습의 경계는 어디인가?
  3. 네이선이 "예수는 뱅갈라다(독나무다)"라고 외칠 때, 이것은 그저 말실수인가, 아니면 선교 자체의 본질을 드러내는 은유인가?
  4. 우리가 일상에서 "오역"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좋은 의도로 말했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도착한 경험이 있는가?
섹션 3

'프로그램'의 수출 — 민주주의, 기독교, 그리고 새 냄비

콩고는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으나 곧바로 미국과 벨기에의 개입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루뭄바 총리가 암살당한다. 이 소설에서 킬랑가 마을은 이 거대한 역사의 축소판이다. 마을 추장 타타 은두는 네이선의 교회에서 예수를 민주적으로 투표에 부치고, 아나톨은 외부 문화를 "새 냄비"에 비유하며 콩고인들의 주체적 수용 능력을 보여준다.

발췌 3-1

예수를 투표에 부치다

[Book 4, p.409-412] 킬랑가 마을에서 타타 은두 추장이 교회 예배 중 투표를 제안한다.

"타타 프라이스, 백인들은 우리의 사고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가져왔습니다. 예수 프로그램과 선거 프로그램. 당신들은 그것들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요. 이제 와서 그것들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백인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투표하시오, 반투!'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다고 합디다. 두 사람이 동의하고 한 사람이 거부하면 그 문제는 끝난 거라고 말이오. 그게 어떻게 끝날지는 어린 아이도 알 수 있어요. 불 위에 냄비를 얹어놓으려면 돌멩이가 세 개 있어야 해요. 하나를 빼고 두 개만 남겨놓으면 어떻게 되겠소? 냄비는 불 속으로 엎어지고 말 거요."

타타 은두가 아버지를 돌아보며 거의 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백인이니까 '라 마조리테'의 법칙을 이해할 겁니다. 타타 프라이스, '웬다 음보테.'"

예수 그리스도가 패했다. 11대 56으로.

발췌 3-2

새 냄비의 비유 — 아나톨의 지혜

[Book 3, p.356] 아나톨이 리아에게 콩고인들이 외부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설명한다.

"나는 그동안 내가 목격한 것을 존중하는 거야. 새로운 사람이 선물을 들고 집을 찾아오면 모든 게 변할 수밖에 없어. 그 사람이 너한테 냄비를 들고 왔다고 가정해보자. 넌 이미 그럭저럭 괜찮은 냄비를 갖고 있는데, 그 새 냄비가 훨씬 더 큰 거야. 그럼 넌 아주 기뻐하면서 옛날 냄비는 동생에게 줘버리고 의기양양해하겠지. 그런데 그 새 냄비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다고 치자. 그런 경우 너는 그 손님에게 몹시 감사해하다가 그가 가고 나면 그걸 마당에 놓고 닭들에게 생선 비늘을 먹이는 그릇으로 쓰겠지."

토론 주제
  1. 타타 은두의 투표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날카롭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가장 순수한 적용인가?
  2. "세 개의 돌이 냄비를 받친다" — 합의 기반의 전통과 다수결 민주주의, 어느 쪽이 더 "민주적"인가?
  3. 아나톨의 "새 냄비" 비유처럼, 외부에서 온 것을 주체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과 불가능한 상황은 각각 어떤 것이 있을까?
섹션 4

루스 메이의 죽음 — 불가능한 선택과 애도

막내딸 루스 메이가 녹색 맘바뱀에 물려 죽는다. 이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 루스 메이 자신은 죽기 전부터 맘바 독사에 매혹되어 있었고, 개미떼 습격의 밤에는 가장 안전한 곳을 상상했다. 올리아나는 그 밤 에이다와 루스 메이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고, "완전한 아이"를 선택했다. 네이선은 딸의 죽음 앞에서 "아직 세례를 못 받았는데"라고 말하고, 올리아나는 말없이 장례를 준비한 뒤 모든 세간을 나눠주고 킬랑가를 떠난다.

발췌 4-1

맘바 독사가 되고 싶은 아이

[Book 3-4, p.379-380] 개미떼 습격의 밤. 루스 메이의 시선으로 본 공포와, 가장 안전한 곳에 대한 상상.

모든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고함을 쳐댔다. 나는 내려달라고 발버둥쳤다. … 아기들 울음소리, 여자들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거라곤 엄마와 떨어졌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에이다 언니가 보였다. 엄마는 에이다 언니한테 손을 뻗으면서 큰 소리로 울며 말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안았다. 콩고 사람.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안다. 나무 위에 있는 맘바 독사. 맘바 독사가 되면 더 이상 맘바 독사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맘바 독사는 나뭇가지에 꼼짝 않고 앉아 있다. 나무랑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 나는 사라졌다가 나타나면 맘바 독사가 되고 싶다. 작고 동그란 눈을 가졌지만 아주 높이 있기 때문에 온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 엄마랑 모든 사람을. 그러면 결국 누구보다도 높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발췌 4-2

어머니의 선택 — 완전한 아이와 불완전한 아이

[Book 5, p.501-502] 에이다가 개미떼의 밤을 회상한다.

어느 긴 콩고의 밤에 나는 힘의 균형을 배웠다. 군대개미들이 쳐들어온 그날 밤. 문 두드리는 소리, 어둠 속의 몸싸움과 따끔거리는 발 그리고 맨 뒤에서 영원한 제 몸의 노래 '왼발…… 뒤로'를 부르며 몸을 끌던 에이다.

달빛 아래 땅이 부글거리는 밖으로 나갔을 때 엄마가 폭풍 한가운데 뿌리박힌 나무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품에 루스 메이를 안고 나를 바라보며 우리 둘의 가치를 재던 엄마. 금발 곱슬머리에 튼튼하고 완벽한 한 쌍의 다리를 가진 온전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반쪽짜리 몸을 끌고 다니는 고집스럽고 어두운 사춘기 아이. 누구를 택할까? 겨우 1초를 망설인 끝에 엄마는 완벽한 아이를 구하고 상한 아이는 남겨두기로 했다. 누구나 선택은 해야 한다.

나는 루스 메이가 죽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일까? 내가 어떤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모든 배신은 완벽한 기회를 수반한다.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듯 배신의 뒷면에는 구원이 찍혀 있다.

발췌 4-3

침묵의 장례

[Book 4, p.452-456] 루스 메이가 죽은 직후. 올리아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장례를 준비한다.

엄마는 말없이 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다음, 집안일에 열중했다. 가장 먼저 우리 침대에서 모기장을 뜯어냈다. … 엄마는 수의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부엌으로 나가 화로에 불을 피우고 물 한 냄비를 데운 다음, 그것을 집 안으로 갖고 들어와 수건으로 마치 아기를 목욕시키듯 루스 메이의 몸을 닦았다. … 뒤통수를 받치고 머리를 들어 올려 루스 메이의 눈에 비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헹궈주기도 했다. 축 처진 금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을 때는 몸을 숙여 냄새를 들이마셨다.

엄마는 우리 모두를 보며 그대로 선 채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 마침내 미국에서 가져온 질 좋은 프라이팬을 마마 무안자의 두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의 블라우스와 원피스는 마마 무안자의 아이들에게 주었다.

발췌 4-4

슬픔이라는 밧줄 — 올리아나의 출애굽

[Book 5, p.464-468] 올리아나가 루스 메이의 죽음 후 킬랑가를 떠나며.

슬픔의 실체는 허상이 아니다. 그것은 밧줄이나 산소 부족처럼 실질적이며 그 두 가지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내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한 슬픔은 마치 헤엄치는 사람의 긴 머리카락처럼 내 뒤를 따라 흐를 뿐이었다. 그 묵직한 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것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의지가 아니라 본능에 의해 나는 살아 있었다. 슬픔에서 도망치려고도 해보았다. 나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놓은 것은 영혼이 아니라 그저 몸이었다.

'살라 음보테.' 내가 계속 걸은 것은 내게 아직 나를 옮겨줄 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췌 4-5

수십 년 뒤의 질문

[Book 5, p.539] 에이다가 성인이 된 뒤 어머니를 깨워 묻는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깨워 마침내 물었다. 그날 쿠에게 강에서 왜 나를 선택했냐고.

엄마는 부적절한 대답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머뭇거렸다. … 이윽고 엄마가 말했다. "루스 메이 다음으로는 네가 막내였잖아, 에이다. 엄마들은 다른 방법이 없으면 어린 순서대로 챙기거든."

그것이 놀랍도록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믿고 살기로 했다.

토론 주제
  1. 루스 메이가 "맘바 독사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은 단순한 어린아이의 상상인가, 아니면 죽음에 대한 예감인가?
  2. 올리아나의 "아래부터 챙긴다"는 대답은 정당한가? 이것은 모성의 논리인가, 자기 합리화인가?
  3. 올리아나의 침묵의 장례에서 가장 인상적인 행위는 무엇인가? 말없는 행동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표현하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4. "슬픔은 밧줄이나 산소 부족처럼 실질적이다" — 슬픔을 이렇게 물리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주는가?
  5. "모든 배신에는 구원의 뒷면이 있다" — 이 문장에 동의하는가?
섹션 5

세 자매의 출애굽 —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다

루스 메이의 죽음 이후 가족은 해체된다. 올리아나는 세 딸을 데리고 콩고를 떠나고, 네이선은 홀로 남는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세 자매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 레이첼은 아프리카에 머물지만 철저히 고립된 백인으로 호텔을 운영하고, 리아는 아나톨과 결혼해 콩고에서 "반(反)선교사"로 살며, 에이다는 미국으로 돌아가 의사가 되고 장애를 "치료"받지만 무언가를 잃는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올리아나와 세 딸은 콩고의 한 시장에서 재회하고, 죽은 루스 메이의 목소리가 용서를 말한다.

발췌 5-1

레이첼 —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생존법

[Book 6-7, p.632-633] 레이첼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대한 내 관점은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히 그 존재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우리의 사고방식이 있고 아프리카엔 그 나름의 사고방식이 있으며, 열차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 주의할 점은 정신적으로 아프리카에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저 밖에서 흉측한 일들이 벌어진다면, 문에 튼튼한 자물쇠를 달고 두 번씩 확인한 다음 잠자리에 들어라. 내가 그랬듯 자신의 땅을 완벽하게 지키는 데에만 열중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의 걱정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때에는 옆에 있는 사람의 몸에 올라타라. 그러면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닿을 때 그 사람의 몸이 완충 역할을 해줄 것이다. … 밀고 당기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당신은 그저 그들을 타고 가라. 그러면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발췌 5-2

리아 — 반(反)선교사, 그리고 용서의 선물

[Book 6-7, p.620-621, 642-643] 리아는 아나톨과 결혼해 콩고/자이르에서 농업 지원 활동을 한다.

매일 무릎을 꿇고 개종하게 해달라고 청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에이다는 반(反)선교사라고 부를 것이다. '아프리카여, 당신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나를 용서하소서.'

어떻게든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선물 하나만 줄 수 있다면, 당신이 부적절한 일을 했음을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단순한 인간적 구원을 선물할 것이다.

내 네 아들을 본다. 토사 색, 양토 색, 흙먼지 색, 점토 색, 그들의 아이들은 무한히 다양한 색깔일 것이다. 시간이 내 흰색을 완전히 지워주고 있음을 나는 깨닫는다.

발췌 5-3

에이다 — 장애를 잃는다는 것

[Book 5, 6-7, p.532-539] 에이다는 미국에서 신경 재활을 통해 걸음을 교정받지만, 무언가를 잃는다.

나는 내 '비스듬함'을 잃고 있다.

팔다리를 잃으면 내 전체를 잃게 될까?

내가 콩고를 벗어날 때 휘어진 작은 등에 지고 나온 것은 생의 가치에 대한 지독한 불확실성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의사가 되려 한다.

킬랑가에서 '은졸로'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하나는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이다. 또 하나는 낚시 미끼로 각광받는 노란색의 굵은 유충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가끔씩 시장에 나오는 작은 감자의 일종으로 … 우리는 교회에서 목청이 터지도록 "타타 은졸로!"를 노래한다. 과연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작은 감자의 신을 부르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발췌 5-4

시장의 재회 — 30년 후의 킬랑가

[Book 7, p.656-662] 소설의 마지막 장. 올리아나와 세 딸이 콩고의 한 시장에서 재회한다.

또 다른 날, 똑같은 여자가 자식들을 데리고 시장을 지납니다. 이제 그 여자는 백발이고 딸은 셋뿐이랍니다. 그중 아무도 다리를 절지 않아요. … 딸 하나는 종종 옆에 있는 옷감을 만져보며 상인들과 그들의 언어로 얘기를 나눠요. 또 한 명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자기 돈을 가슴에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요.

여자와 딸들은 찾지 못할 무언가를 찾고 있어요. 그들은 킬랑가로 가는 길, 그러니까 막내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찾을 계획이었죠. 특히 엄마는 그곳에 표석을 놓고 싶어 한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엄마와 딸들은 한 여인을 보고 우뚝 걸음을 멈춥니다. … 여자는 밝은 천을 깔고 그 위에 나무를 깎아 만든 조그만 동물을 수백 개나 펼쳐놓고 있어요. … 나무로 완벽하게 조각한 작은 오카피. 여자가 말합니다. '당신 거예요, 부인. 선물이에요.'

올리애너는 그 작은 기적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평생 그랬듯이.

발췌 5-5

루스 메이 — 용서하되 잊지 말라

[Book 7, p.662] 소설의 마지막. 죽은 루스 메이의 목소리가 어머니에게 말한다.

잊지 마세요. 죽는 건 살아 있는 것보다 나쁜 게 아니에요. 그저 다른 거예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죠.

어깨의 짐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당신은 잊을까봐 걱정하지만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용서하고 기억하세요. 한때 내 심장이었던 작은 사각형의 땅에서…

엄마, 여전히 쥐고 있어도 되지만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우리 둘 다 사는 동안 오래도록 놓으세요.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엄마.

토론 주제
  1. 레이첼, 리아, 에이다 세 자매 중 누구의 삶의 방식이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누구에게 더 가까운가?
  2. 리아가 아버지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잘못을 알고도 살아가는 것"이다. 왜 이것이 선물인가?
  3. 에이다가 장애를 "치료"받으면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은졸로"의 세 가지 뜻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을 에이다는 어떻게 묘사하는가?
  4. 시장 장면에서 킬랑가가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올리아나가 작은 오카피를 받아드는 순간은 왜 "기적"인가?
  5. "용서하되 잊지 말라" — forgive and forget이 아닌 forgive and remember라는 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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