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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와이북클럽 3월 발제문

월간와이북클럽 3월 발제문
차례
  1. 척추 — 나의 중심p.43~44
  2. 아버지의 선언, 언니의 제안p.94~99
  3. 해산 — 최애 없는 여생p.105~107, p.119~120
  4. 결말 — 면봉, 그리고 기어가기p.130~132
파트 1

척추 — 나의 중심

p.43~44
발췌

신곡이 나오면 일명 '제단'이라고 부르는 선반에 CD를 장식한다. 벗어 던진 옷과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내용물이 들어 있는 페트병, 펼친 채 엎어 놓은 교과서나 그 사이에 끼워진 프린트 따위로 방은 어지럽지만, 청백색 커튼과 밝은 남색 유리 램프 덕분에 들이치는 빛과 바람은 항상 파란빛이다.

아이돌에게는 보통 멤버 컬러가 있어 공연장에서 응원할 때 쓰는 야광봉이나 각 멤버의 굿즈를 그 색으로 만든다. 최애가 파란색이니까 나는 내 주변을 완벽하게 파란색으로 물들였다. 파란 공간에 잠기면 안심할 수 있다.

이 방의 중심은 들어오자마자 알 수 있다. 교회의 십자가나 절의 본존을 모신 곳처럼 선반 가장 높은 단에 최애의 사인이 있는 커다란 사진을 장식하고, 그곳에서부터 퍼지듯이 새파란색, 남색, 물빛, 진청색 등 조금씩 색감이 다른 액자에 포스터와 사진을 넣어 벽을 가득 채웠다. 선반에는 DVD와 CD, 잡지, 팸플릿이 연대별로 더 오래된 것부터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빽빽하게 꽂혀 있다.

다들 어렵지 않게 해내는 평범한 생활도 내게는 쉽지 않아서, 그 여파 때문에 구깃구깃 구겨져 괴롭다. 그래도 최애를 응원하는 것이 내 생활의 중심이자 절대적인 것이라는 점만은 세상 그 무엇보다 명확했다. 중심이 아니라 척추랄까.

공부나 동아리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해서 번 돈으로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사거나, 대부분은 그렇게 인생을 꾸미고 살찌움으로써 더욱 풍족해질 것이다. 나는 역행하고 있다. 무슨 고행이라도 하듯이 나 자신이 척추에 집약된다. 무의미한 것을 깎아내고 척추만 남는다.

· · ·

'아카리, 전에도 말했지만 여름방학 근무 신청표 제출해 줘.' 사치요 씨에게 메시지가 와서 누워 뒹굴며 스케줄 앱을 열었다. 일정은 최애를 우선으로 정한다. 인기투표 결과 발표일은 일찍 퇴근하기로 하고, 투표 후 악수회 날은 당연히 피한다. 악수회 후에는 여운에 젖고 싶으니까 하루 비워 두기. 그래도 CD는 사고 싶고 3월에는 콘서트도 있다. 갈 때마다 예상 밖의 지출이 있으니까 아르바이트는 한계까지 최대한으로 채우고 싶다.

콘서트 때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테니, 결국 거의 매일 근무를 희망한다고 적어 보냈다. 학교에 안 가니까 지금보다 더 집중할 수 있겠지. 오로지 최애를 응원하는 여름방학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단순 소박함이 분명 내 행복인 것 같았다.

토론 주제
  1. "무의미한 것을 깎아내고 척추만 남긴다"는 표현에서, 이 '집약'을 자기 보호로 읽을 수 있는가, 자기 파괴로 읽어야 하는가?
  2. 아카리의 스케줄은 전적으로 최애를 기준으로 짜인다. 이것은 주체적인 삶의 방식인가, 아니면 주체성을 포기한 결과인가?
파트 2

아버지의 선언, 언니의 제안

p.94~99
발췌

거실로 돌아왔더니 갑자기 취업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소파에 앉자 눈앞에 아빠가 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옆에서 테이블을 정리한다. 아빠도 엄마도 일부러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히려 분위기가 깨지는 느낌이다.

"요즘 어떠니? 취업 준비는 하고 있어?" 아빠가 속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했다. 테이블에 양쪽 팔꿈치를 대고 양손을 깍지 낀다. 무의미하게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불쾌했다.

"안 한다니까, 아무것도. 내가 얼마나 말했는데. 그때마다 얼버무리면서 했다고 오히려 화를 내. 어떻게 했나 보면, 회사 두세 군데에 전화하고 끝이야. 아무 의욕이 없어." 엄마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대답했다.

아빠는 엄마를 상대하지 않고 내게 어떠냐고 물었다. "찾기는 했어." "이력서는 보냈어?" "아니, 전화했어." "뭐 하자는 건지...." 엄마가 또 끼어들었다. "맨날 이래. 항상 이렇다니까. 대충 넘기면 된다고 생각하지?" "반년 넘게 시간이 있었지. 왜 아무것도 안 했니?" "못한 거야." 내가 대답하자 엄마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콘서트에 갈 여유는 있으면서."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아빠 엄마도 계속 부양해 줄 순 없어."

· · ·

"학교도 안 가고 취직도 안 하겠다면 돈은 못 준다. 기한을 정하자." 아빠는 논리정연하게 해결만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 명쾌하게, 냉정하게, 어떤 일이든 어렵지 않게 해낸 인간 특유의 미소까지 짓고서 말한다. 아빠나 다른 어른들이 하는 말은 다 뻔한 소리이고 이미 내가 수없이 나 자신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어.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못 얻으면 죽어." "그럼 죽을래." "아니, 아니지,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달래며 말리니까 부아가 치밀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최애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런 괴로움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럼 뭔데?" 울먹이는 소리가 나왔다. "일하라고, 일하라고 하는데 못한단 말이야. 병원에서 그러잖아. 나는 평범하지 않아." "또 그런 변명이나 하고." "변명이 아니야, 변명 같은 게 아니라고."

숨을 잘못 삼켜서 목에서 꽉 눌린 소리가 났다. 언니가 말없이 내려와 서 있는 모습이 시야 끝에 걸렸다. 언니의 초록색 티셔츠가 번져 보이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울고만 내가 한심했다. 육체에 질질 끌려, 육체 때문에 우는 것이 한심했다.

"그냥 괜찮잖아." 그때까지 잠자고 있던 언니가 불쑥 말했다.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빠가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있잖아, 뭐 어때, 괜찮잖아. 일단 혼자 살아 보면 어때? 이대로는 너무 힘들잖아."

빗물 소리가 찰싹찰싹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때리듯이 세 사람이 있는 공간에 떨어진다. 하얗고 차가운 가을비가 텅 빈 우리 집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결국 할머니가 살던 이 집으로 이사하게 됐다.

토론 주제
  1. 아버지는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아카리는 "못한 거야"라고 받아친다. 텍스트 안에서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을 구별할 근거가 있는가?
  2. 언니의 "일단 혼자 살아보면 어때"는 이 서사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배려와 방출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보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파트 3

해산 — 최애 없는 여생

p.105~107, p.119~120
발췌

기자회견은 거의 사죄 회견이나 마찬가지였다. 멤버 모두 정장을 입었는데, 각자 안에 입은 와이셔츠의 연한 멤버별 컬러만이 사죄 회견이 아니라고 알려 주었다. 플래시가 깜박일 때마다 최애의 홍채가 연갈색으로 변했다.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생겼다.

아키히토가 마이크를 잡고 "오늘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질의응답이 시작되었다.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한다. 각자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다. 멤버 전원이 상의해서 결정했다.

"…그리고 저 우에노 마사키는 해체와 함께 연예계를 은퇴합니다. 앞으로 어디서라도 절 보시면 아이돌도,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으로 조용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이 너무 예상 그대로여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는데, 나를 가장 동요하게 한 것은 왼손 약지에 낀 은반지였다. 왼손을 오른손 위로 겹친 걸 보아 감출 생각이 없거나 오히려 무언의 보고일지도 몰랐다. 최애의 '저'라는 일인칭이 귀에 위화감을 남긴 채 회견은 끝났다.

· · ·

1부가 시작되고 호응을 유도하는 최애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부터 나는 오로지 최애의 이름을 외치고 쫓는 존재가 됐다. 매초 최애와 똑같이 주먹을 흔들며 소리치고 펄쩍펄쩍 뛰자 최애가 내는 물에 빠진 듯한 숨소리가 내 목에서 울려 괴로웠다.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 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 그래서 최애를 해석하고 최애를 알려고 했다.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

· · ·

변기에 앉았다. 등을 타고 냉기가 올라왔다. 땀을 흘리면 흘릴수록, 욕조에 뜨겁게 담갔던 몸이 빠르게 식는 것처럼 붕 떠올랐던 기분 뒤에는 그 이상의 추위가 닥친다.

끝나는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귀엽고 대단하고 사랑스러운데 끝난다. 사방을 막은 화장실 벽이 분주한 바깥 세계로부터 나를 분리했다. 조금 전까지 흥분으로 경련하며 꿈틀거리던 내장이 하나씩 얼어붙었고, 척추까지 그 생각이 침투하자 그러지 말아 달라고 바랐다. 그러지 마,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생각했다. 무엇을 향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지 말아 줘, 내게서 척추를 빼앗아 가지 마. 최애가 사라지면 나는 정말로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나를 나라고 인정하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고 난 뒤 곁에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최애를 파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다. 최애 없는 인생은 여생일 뿐이다.

토론 주제
  1. "최애를 파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정체성을 외부에 위탁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상태는 반드시 병리적인가, 아니면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만 있는 것인가?
  2. "최애 없는 인생은 여생일 뿐이다"를 절망의 표현으로 읽어야 하는가, 삶의 의미가 어디서 오는지에 관한 정직한 고백으로 읽어야 하는가?
파트 4

결말 — 면봉, 그리고 기어가기

p.130~132
발췌

사람이 불탄다. 살이 불타 뼈가 된다. 할머니가 엄마를 일본에 붙들었을 때, 엄마는 할머니에게 몇 번이나 당신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내 자식이 아니라는 소리를 수없이 들으며 컸다고 한다. 이제 와서 딸을 붙들어 두다니, 하며 울었다. 자업자득. 자기가 한 행위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 살을 깎아 뼈가 되는 것, 최애를 파는 일은 내 생업이 분명했다. 일평생을 바쳐 그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죽은 후의 나는 내 뼈를 스스로 주울 수 없다.

집에 돌아왔다. 돌아와도 현실이, 벗어 던진 옷과 머리끈과 충전기와 비닐봉지와 빈 티슈 케이스와 뒤집힌 가방이 있을 뿐이었다. 왜 나는 평범하게 생활하지 못할까. 인간으로서 최저한의 생활이 왜 마음대로 안 될까. 처음부터 망가뜨리려고, 어지럽히려고 한 게 아니다. 살아 있었더니 노폐물처럼 고였다. 살아 있었더니 내 집이 무너졌다.

최애는 왜 사람을 때렸을까. 소중한 것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려고 했을까. 진상은 모른다. 앞으로 영영 알 수 없다. 그래도 좀 더 깊은 곳에서 그 사실과 내가 연결됐다는 생각도 든다.

줄곧,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살이 무겁고 성가셨다. 이제는 살이 전율하는 대로 내가 나를 부수려고 했다. 엉망진창이 됐다고 생각하기 싫으니까 내가 엉망진창을 만들고 싶었다. 테이블로 시선을 돌린다. 면봉 케이스에 눈이 멎는다. 덥석 붙잡아 번쩍 든다. 배에 들어간 힘이 척추를 타고 오르고, 숨을 들이마신다. 시야가 한껏 넓어지고 전부 살색으로, 육체의 색으로 물든다. 내려친다. 있는 힘껏, 지금까지 나를 향했던 분노를, 슬픔을 내동댕이치듯이 내려친다.

플라스틱 케이스가 소리를 내며 뒹굴고 면봉이 흐트러졌다. 까마귀가 울었다. 잠시 방 전체를 둘러봤다. 툇마루에서,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방 전체를 밝게 드러냈다. 중심이 아닌 전체가, 내가 살아온 결과였다. 뼈도 살도 전부 나였다. 그걸 내동댕이치기 직전을 떠올렸다. 꺼내 놓은 컵, 국물이 든 사발, 리모컨. 시선을 쭉 움직인 끝에 결국, 뒷정리가 편한 면봉 케이스를 골랐다. 거품처럼 웃음이 차올랐다가 펑 터졌다.

면봉을 주웠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뼈를 줍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내가 바닥에 어지른 면봉을 주웠다. 면봉을 다 주워도 하얗게 곰팡이가 핀 주먹밥을 주워야 하고 다 마신 콜라 페트병을 주워야 했지만, 앞으로의 길고 긴 여정이 보였다.

기어 다니면서, 이게 내가 사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족 보행은 맞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겠다. 몸이 무겁다. 면봉을 주웠다.

토론 주제
  1. 아카리는 내던질 물건으로 면봉 케이스를 고른다. "뒷정리가 편한 것을 골랐다"는 자각이 웃음을 불러온다. 이 순간을 자기 파괴 충동과 자기 보존 본능이 동시에 작동하는 장면으로 읽는다면, 텍스트 안에 그 근거가 있는가?
  2. "이족 보행은 맞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체념인가, 수용인가? 두 개념은 이 결말에서 어떻게 갈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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