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6월 월간와이북클럽 발제문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 열차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열차를 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진짜 가족을 찾아서
- 우리는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 진정한 가족이란 어떤 것일까요?
해결불가능성에 의한 내적 파괴
- 해결할 수 없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나요?
- 그러한 위기를 마주하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요?
여성이라는 것
- 여성은 어떻게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 여성은 본래 어떤 존재일까요?
책 속에서
1
한때는 도쿄 어딘가에 집이 있고 어머니도 있던 시절이 있었을까. 아버지는 그것들을 잃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시설의 직원이 알아본 결과 허위 증명서라고 결론이 났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것은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근거임이 틀림없었다. 그 증명서를 토대로 아이는 자기가 태어난 집과 가족을 만들어냈다. 낡았지만 적당한 크기의 아늑한 집. 널빤지로 둘러싸인 작은 마당이 있는. 마당에 놓인 커다란 대야에서는 아기적의 자신이 물놀이를 하고 있 고, 동그란 얼굴의 어머니가 자기 몸을 씻겨주고 있다. 주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형과 누나다. 툇마루에서는 아버지가 하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귀청소를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하늘에서 불덩이가 쏟아져 담장이 타고, 집이 타고, 어머니와 형과 누나, 고양이도 몽땅 불에 타 땅 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2
아이는 '시베리아가 어릴 적 아버지와 둘이서 밤을 보내던 그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시베리아'라는 단어의 울림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돌과 흙의 감촉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였기에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계명과 같은 지명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함께 곰팡내 나는 낙엽과 담요를 덮고 자던 곳. 그곳이 아이에게는 아버지를 대신했다. 시베리아 -'시베리아'는 한없이 펼쳐졌다. 얼마나 넓은지 네 살 난 아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3
하굣길의 우울한 세일러복 무리에서 나 한 사람만을 구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게 '미쓰오'든 누구든 대개는 크게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 사람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의 젊은 남자라면 더욱 그렇다. 세일러복 무리는 젊은 남자가 마중을 나와준 특별한 한 사람에게 선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 나도 저렇게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
벌거 벗은 인간의 아이, 작은 개구리 같은 모글리. 초라하게도 인간 아이의 몸에는 털도 없고 꼬리도 없다. 코와 귀는 늑대의 만분의 일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발톱과 이도 여리디여려 적에 대항할 만한 무기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엾은 것은 성장이 너무나 늦어 반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는 갓난아기라는 점이다.
5
‘차가운 잠자리'에 원숭이들이 계속 늘어갔다. 어딘가로 사라진 인간의 흉내를 내며 한껏 거들먹거리는 원숭이들. 그들은 질서를 모르고, 눈앞의 식욕에 자신을 잊고, 남의 물건을 보면 뺏고 싶어한다. 은혜도 모르고 참을 줄도 모른다. 그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긴다.
6
아젤라는 오 년 전에 찾아갔던 '모글리'가 자란 집을 떠올린다. 골목 뒤에 있는 흔하디흔한 집이었다. 현관의 유리문에는 금이 가 있고, 아이들의 옷차림은 조금 때가 묻어 있었으며, 몹시도 마른 어머니는 미소도 없이 미간에 깊은 주름을 지은 채 즐거웠던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켈라'의 '어머니' 쪽이 훨씬 다정한 어머니 같았다. 그리고 묘지에 살던 '아켈라'의 아버지. 물론 '아켈라 는 아버지가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이미 반쯤 저세상을 헤매던 아버지는 네 살 난 '아켈라'에게 제대로 말을 건넨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켈라'는 잊지 않고 있다. 새를 잡으면 반드시 '아켈라'에게 먹였던 것을.
7
그리고 '모글리'가 여자아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켈라 한테는 그것 또한 신기했다. 단발머리만이 문제는 아닌 것 같다.'모글리'의 작고 하얀 손도 문제다. 손톱은 엷은 분홍색으로 빛이 나 고 지나치게 부드러워 보인다. 귀와 목도 하나같이 깨끗하고 너무 매 끈하다. 이런 어린애라도 남자와 여자는 다른 걸까. 며칠씩 목욕을 못하는 생활을 하면 여자다움도 사라질까. 가느다란 눈썹에 밀가루를 반죽해 얹은 것 같은 작은 코를 보면 아직 어린아이의 얼굴이 틀림없 다. 그런데도 남자아이와는 어딘가 다르다.
8
작은 인간의 아이 '모글리'는 발톱도 없고 송곳니도 없다. 아켈라처럼 아름다운 털도 없다. 발가벗은 초라한 아이, 그런 '모글리가 필사적으로 '아켈라'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 온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부족한 자기 아이에게 갖는 마음과 비슷할까.
9
알지도 못하는 이런 곳에 혼자 버려지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아켈라'의 뒤를 쫓아왔지만, 나중에는 '아켈라'와 100미터 이상 거리가 벌어졌다. 모글리'는 운동을 못하는데다 달리는 것도 늦어 운동회를 싫어했다. 매년 꼴찌로 들어온 표시로 가슴에 초록색 리본을 달다보면 누구라도 진절머리가 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달린 걸까? 3킬로미터 이상은 달린 것 같 다. 도중에 한 번 쉬긴 했지만 '모글리'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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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글리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생을 마감하려 했던 빈사 상태의 아켈라. 왕인 아켈라도 어린 개구리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존재에 위안 을 얻으며 자신의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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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글리'는 교복인 세일러복에 책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게 아주 오랜 옛날 일 같은 생각이 든다. 터무니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제와서 돌아 갈 수도 없다. 너무나 멀리 와버렸다. 그리고 뭐가 잘못인지도 분명치가 않다. 생각을 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쨌든 지금은 열차를 타고 있고, 그 열차는 많은 승객을 태우고 선로 위를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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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요. 도요 누나가 혼자서 중얼거렸었다. 어차피 죽을 거면 엄마 아빠가 죽을 때 함께 가면 좋았을걸, 이제 와서 죽으면 혼자 헤매고 다니지는 않을까요. 제 이름도 모르는 갓난아기가 어째서 혼자 죽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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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에는 그런 구덩이가 필요해. 무엇인가에 절망해 죽고 싶을 때 그 구덩이로 가고 싶을 정도인지를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 있잖아. 거기까지는 싫다는 생각이 들면 실은 아직 죽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 정말로 죽고 싶은 건지, 스스로는 좀처럼 알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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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는 '세상은 내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북쪽이든 남쪽이든. 서쪽이든 동쪽이든, 어디로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가면 되었다. 나는 어린아이지만 나 자신의 주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레미에게는 기쁨이 아닌 슬픔이었다. 당연히 그랬겠지. 열일곱 살인 레미'는 이해할 수 있다. 아직은 어린아이가 아닌가.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나 건강에 대한 걱정도, 추위나 더위로 인한 고통도 아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주고 있다는 안정감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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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카피'도 가능한 한 몸을 움츠린 채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부탁이에요. 너무 아프지 않고 죽게 해주세요. 오빠도 나를 도와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콜레라로 죽는 건 상상도 못 했지만, 불만은 없어요. 누구나 죽게 마련이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아픈 건 싫어요. 나는 죽을 때 어디쯤에서 의식이 사라지는지도 몰라요. 슬픔과 근심에 위로를 주소서. 고통과 번민에 힘을 주소서. 임종시에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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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등지'란 몹시 갑갑하지. 레미를 길러준 가난한 농가 아주머니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 아주머니도 남편이 가난 때문에 레미를 팔아넘기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레미가 진짜 자기 아이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해봐. 물론 여기서는 궁핍함이 큰 이유가 되지만, 그럼 갑부인 진짜 어머니는 어떨까. 돈이 그렇게 많지만 일가친척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다 키울 생각 같은 건 전혀 못해. 진짜 자기 아이, 그러니까 오로지 레미만을 죽어라 찾아다니지. 인간의 둥지'란 진짜 아이, 그렇지 않으면 기껏해야 친척 아이 정도만 받아들이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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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한도 있고, 여자아이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레미'가 만약 내 가슴을 만져보고 싶다면, 그렇해도 좋아. 그러면 '레미'의 고추가 커지는지 어떤지 가르쳐줬으면 하 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거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 가슴은 겨우 모기한테 물린 정도밖에 안 되는걸. 금방 다시 꺼져버릴 것 같아. 내가 이대로 진짜 남자아이가 되면 좋을 텐데. 그래도 '레미'는 계속 내 곁에 있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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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적어도 헤어지진 않을 거야. 우리, 이제 끝인지도 몰라. 살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함 께인 것은 변함이 없다." "응, 언제나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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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미쓰오'는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뭐라고 소리 쳤을까. 미쓰오'의 이름을 부르며 뭐하는 거야, 하지 마! 뇌줘! 하고 저항했을까. 아마 나도 '미쓰오'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 바라보기 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울기 시작했을 것이다. 둘 다 몰래 두려워하던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 말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 했고, 미쓰오'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온몸이 가루가 되는 것 같은 절망을 맛보았다. 이제 두 번 다시 '미쓰오'와 만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사별과 다르지 않은 절망이었다. 남자들이 미쓰오'를 일으켜 세워 거칠게 통로로 밀어낸 뒤 등을 밀치거나 걷어차며 걸어갔고, 미쓰오' 가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미쓰오'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 얼 굴은 공포로 가득했다. '미쓰오'의 파랗게 빛나는 눈이 늑대의 눈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이 내가 본 미쓰오'의 마지막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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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뜨자, 지겨울 만큼 익숙한 어머니의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다시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더욱 주의 깊게 들여다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어머니의 시간 속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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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맛보았을 불안과 공포, 비탄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이제 다시 곁으로 돌아온 나에 대 한 어머니의 노여움과 원망, 미움을 건드리는 것도 두려웠다. 그렇지 만 어쨌든 어머니와 딸이다. 쓸데없는 배려나 엉뚱한 말을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는 개의치 않고 각자의 피로와 혼란속에 몸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그렇게 예전의 시간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책 밖에서
1. 나쓰메 소세키, <마음> 中
‘자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무렵이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걸세. 이미 죽었겠지. ’ 심장에서 쿵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금까지 유연하게 움직이던 심장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기차 시간을 확인했다. 허리띠를 동여매고 소매 속에 편지를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부엌 쪽으로 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역에 도착해서 벽에다 종이를 대고 어머니와 형 앞으로 편지를 썼다. 내용은 극히 간단한 것이었지만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인력거꾼에게 서둘러서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전력을 다해 뛰어 도쿄행 열차에 올라탔다. 덜컹거리는 삼등칸에 앉자마자 소매 속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꺼내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2.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귤> 中
이 터널 속의 기차와, 이 시골뜨기 계집아이와, 그리고 또 이 평범한 기사들로 채워진 신문과… 이것이 상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불가해한, 수준 낮은, 따분하기 짝이 없는 인생의 상징이 아니고 무엇일 것인가
3. <반딧불의 묘> 도입부
1945년 9월 22일 세이타는 죽었다. 세이타는, 산노미야 역 구내 기둥에 구부정하게 기대 앉아 있다. 기둥은 장식타일이 떨어져나가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고, 세이타는 바닥에 엉덩이를 철퍼덕 대고 양다리는 곧장 앞으로 뻗은 채 주저앉아 있다… 세이타가 산노미야 역에 자리를 잡은 것은 보름 전쯤이었다. 산노미야 철교 밑 암시장에서 풍겨오는 음식냄새에 이끌려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역 구내에 있으면 배는 고파도 물만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다… 역 안의 90센티 두께의 굵은 기둥 하나하나에는 세이타 말고도 수십 명이 넘는 부랑아들이 마치 어머니에게 기대듯이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산노미야 역에 모이는 것은 출입이 허락된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인지, 늘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이 그리워서인지, 물을 마실 수 있어서인지, 혹은 변덕스런 선심을 기대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건 밤이 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밤에는 밤의 소리가 있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밤의 소리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세이타는 오늘이 며칠이지? 며칠일까. 얼마나 지난 걸까, 열심히 생각해 본다. 계속해서 며칠이띾? 며칠일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세이타는 죽었다. ’전쟁고아 등에 대한 보호대책 요강‘이 결정된 것은 1945년 9월 21일, 세이타가 죽기 하루 전이었다. “뭐야, 이거?” “그런 건 버려. 내다 버리라구.” 역무원이 그것을 바깥으로 내던졌다. 달캉달캉 소리가 나는 그것, 세이타의 품 속에 있던 알사탕통을 역부원은 여름 잡초가 우거진 부근의 어둠 속으로 던졌다… 그것은 여동생 세츠코의 하얀 뼈였다. 뚜껑이 열린 통에서 하얀 가루가 쏟아지고, 그 속에서 작은 뼛조각 세 개가 굴러나왔다. 그 소리에 풀숲에 머물던 반딧불이 이삼십 마리가 놀란 듯 부산스레 빛을 깜빡이며 날아다니다 흩어졌다.
4.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中
참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걸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도호쿠 지방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터라 기차를 처음 본 건 제법 자란 뒤였습니다. 정거장의 육교를 줄곧 오르내리면서도 그게 선로를 건너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순전히 정거장 구내를 외국의 오락장처럼 복잡하고 재미나게 최신시그로 하기 위해 설치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육교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이 제게는 퍽 세련된 오락거리라 철도 서비스 중에서도 가장 감각 있는 서비스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 그건 어디까지나 여행객들의 선로 횡단을 위해 만든 지극히 실용적인 계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순식간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어릴 때 그림책에서 지하철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도, 이 역시 실용적으로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땅 위를 달리는 차에 타기보다는 땅 밑을 달리는 차에 타는 편이 색다르고 재미있는 놀이라서 만든 줄로만 알았습니다.
5.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中
우리는 그때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게임을 했습니다. 제가 만들어 낸 게임이었습니다. 명사는 모두 남성 명사, 여성 명사, 중성 명사로 구분되니 희극 명사, 비극 명사로도 구분되어야 한다, 이를 테면 증기선과 기차는 둘 다 비극 명사이고, 전차와 버스는 둘 다 희극 명사인데 이유를 모르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희각에 단 하나라도 비극 명사를 집어넣는 극작가는 그것만으로 이미 낮게이며 비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6. <은하철도의 밤> 줄거리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대신 홀로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소년 조반니는 친구들에게서 따돌림당하며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학교 내 모범생이자 조반니의 단짝친구인 캄파넬라는 그러한 조반니를 자주 도와주고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은하수 축제가 있던 날 밤, 조반니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홀로 쓸쓸하게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은하 스테이션'이라는 안내 방송 소리를 듣게 되었고, 정신이 드니 캄파넬라와 함께 은하철도에 탑승해 있었다. 두 사람은 은하철도를 타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순회하는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은하철도 여행은 막바지에 이르러 종착역인 서던크로스(남십자성)에 가까워지고 은하철도에는 또 다시 조반니와 캄파넬라만 남겨졌다. 두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둘이서 함께 나아갈 것을 맹세하나, 이후 캄파넬라는 "엄마는 날 용서해 주실까?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정말로 좋은 일을 한다면 분명 행복할 거야. 그러니 엄마는 날 용서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라는 말을 남긴 채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꿈에서 깨어난 조반니는 식료품을 사고 돌아가는 길에 캄파넬라의 아버지가 수색대원들을 만류하며 "이 쯤에서 그만두어야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살아있을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캄파넬라가 강에 빠진 자넬리를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조반니는 겨우 캄파넬라가 남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더 이상 캄파넬라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슬퍼 흐느껴 울지만 캄파넬라의 아버지는 조반니를 위로하며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아마 이것이 캄파넬라의 운명일지도 모르지."라며 다정하게 달래준다.
7. <은하철도의 밤> 中
"옛날에 전갈 한 마리가 발드라 들판에서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살았대.
그러던 어느 날, 족제비 눈에 띄어서 잡아먹히게 되었다지 뭐야?
그런데 갑자기 앞에 우물이 나타나서, 그 안에 떨어져버렸어.
아무리 발버둥쳐도 올라오지 못하고 우물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지.
그때 전갈은 이렇게 소원을 빌며 기도했대.
'아아,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앗아갔던가? 그러던 내가 족제비에게 잡히게 되자 그토록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치다니! 결국에는 이런 꼴이 되고 말았네. 아아, 이제는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 어째서 내 몸을 잠자코 족제비에게 내주지 않았을까? 내 몸을 주었더라면 족제비도 오늘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신이시여, 제 마음을 헤아려주십시오. 다음 생애는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않고, 모든 이들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 제 몸을 사용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한 순간, 자신의 몸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새빨간 불이 되어 어둠을 밝혀주고 있는 것을 보았대."
<중략>
"캄파넬라, 이제 우리 둘만 남았어. 우리는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가자."
"아까 그 전갈처럼, 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을 백 번이라도 태울 수 있어."
8. <돌아가는 펭귄드럼> 도입부의 대화
“사과는 우주 그 자체야. 손 위에 얹힌 우주. 이 세계와 저쪽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야. 캄파넬라나 다른 승객이 향하고 있는 세계 말야.”
“그거랑 사과에 무슨 관계가 있어?”
“말하자면 사과는 사랑에 의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자에 대한 보상이기도 해.”
“그래도 죽으면 전부 끝이잖아.”
“끝이 아냐. 오히려 거기서 시작된다고 켄지는 말하려는 거야.”
“전혀 못 알아듣겠어.”
“사랑 얘기잖아. 왜 이해를 못 해?”
9.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 줄거리
금융일을 하는 카타기리 앞에 개구리가 나타나 자신을 도와달라며 부탁을 한다. 무슨 부탁이냐고 물으니 도쿄를 지진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지렁이 군(미미즈군)과 싸울 것인데, 그 옆에서 응원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전투 당일, 카타기리는 의문의 습격을 당해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그 습격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고 단지 카타기리는 길거리에서 졸도하여 실려왔던 것인데, 다행인지 꿈속에서 싸워야 하는 전투에는 참가할 수 있었다. 빛의 힘으로 개구리 군을 응원하여 결국 지진을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하나, 끔찍한 부상을 입은 개구리 군은 결국 죽음에 이르고 카타기리는 악몽에서 깨어난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모를 상황 속에서, 카타기리는 개구리 군이 말했던 안나 카레니나와 백야를 읽기로 결심한다.
10. <백야> 中
그렇다. 우리들은 자신의 불행을 느낄 때 비로소 타인의 불행을 보다 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감정이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집중되는 것이다.
11. <완전자살메뉴얼> 후기
씩씩하게 살아가자'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 세상은 꽉 막혀 있어서 답답하다. 숨 쉬기도 힘들고 살기도 힘들다. 그래서 이런 책을 유통시켜서 ’혹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죽으면 그만‘이라는 선택지를 만듦으로써, 꽉 막힌 세상에 통풍구를 열어 환기를 시키고 조금은 살기 쉽게 만들자는 것이 이 책의 진짜 목적이다.
12. <봇케, 교테> 中
돌아가고 싶냐고? 아니, 거기밖에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야.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거친 나무들로 대충 세워 놓은 작은 오두막이지. 그 집으로 돌아갈 바엔 차라리 밖에서 자는 게 나을 정도야. 피와 똥과 원한이 배어있는 구린내 나는 곳이거든. 태아를 으깨어 죽이는 노파는 사라졌지만, 갓난아기는 여전히 강가에 버려져 울고 있잖아. 그래도 나는 거기로 돌아가. 기관차가 쓰야마에 멈추지 않고, 곧장 지옥으로 달려가면 좋을 텐데. 기관차에 몸을 싣고, 즐거운 기분으로 꾸벅꾸벅 조는 거야, 그리고… 자다가 쓰야마 역을 지나쳐서, 진짜 지옥에 다다르는 거지. 꾸벅꾸벅 졸다 보면 피의 연못이야. 지옥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난데없이 비늘산이나 피로 된 연못 같은게 보이지는 않겠지. 귀신도 갑자기 튀어나오진 않을 거야. 가장 먼저 나타나는 건 망가진 인간이야. 분명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겠지. 붉은 땅, 검은 하늘, 그 한가운데를 흐르는 진흙탕 강, 날아가는 바싹 마른 새. 그건 태어나기 전에 봤던 풍경 같은데. 아아, 언니. 같이 돌아가자.
13. 우치다 슌기쿠 인터뷰 中
얼마 전, 마쓰오 다토시가 사회를 맡은 영화 프로그램에서 슌기쿠 씨에게 호러영화란?'이라는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 질문에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이라고 답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말이죠, 올 2월에 (그나저나 벌써 반년 전 일이군요···· 빠르기도 하지) 넷째 아이가 태어났는데요, 남편이 촬영한 비디오가 있었어요. 정면에서 찍은. 그건 뭐, 보려고 하니까 완전 호러인 거예요. 아이가 태어나는 부분도 그렇지만, 태어난 후에도 내가 배꼽 부위에서 함께 나온 것들과 함께 아이를 안고 기뻐하고 있고. 으아, 이상하더라고요. 평소에는 없는 셈 치고 살았던 부분이 밝은 곳으로 드러났을 때의 기묘함 이란. 하지만 평소에 없는 셈 치고 있던 것뿐이지, 사실은 주변에 이런 일이 굉장히 많죠. 계속해서 없는 셈 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 것이랄까요, 호러란.
14. <대보살고개> 도입부
“이보게, 노인.” 그것은 앞에 있던 무사가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노인은 황망히 대답했습니다. "예.“ 노인이 앉음새를 바로하고 정중히 인사하려 했을 때, 그 무사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이리로 나오게." 삿갓도 벗지 않은 채로 무슨 용건인지도 말하지 않고 손짓하며 부르기에, 순례자 차림의 노인은 조심조심 말했습니다. "예, 무슨 용건이십니까?" 허리를 약간 굽히고 다가갔더니, "뒤돌아!" 이 목소리와 동시에 피가 확 뿜어져 나옵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요, 순례를 하던 노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이 두 동강이 되어 푸른 풀 위에 엎어졌습니다. 칼끝을 두 자 세 치 정도 적신 노인의 핏방울을 잠시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 순례자의 겉옷 자투리로 칼을 닦습니다.
15. 미하일 바흐친, <프랑수와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中
카이저의 정의가 지닌 가장 놀라운 점은, 저자가 그로테스크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음울하면서도 무섭고 놀라운 분위기밖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하지만) 카니발적인 세계감각이 침투한 중세와 르네상스의 그로테스크는, 세계를 무섭고 놀라운 것에서 해방시켜서 가능한 한 무섭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그럼으로써 세계를 가능한 한 명랑하고 밝게 그려낸다. 보통 세계에서는 무섭고 사람을 놀라게 하던 모든 것이, 카니발적 세계에서는 즐겁고 <우스운 괴물>로 재탄생한다.
그로테스크는 전혀 다른 세계, 전혀 다른 세계질서, 전혀 다른 생활기구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이것은 현존하는 세계의 거짓된 통일성, 논의의 여지없는 명백성, 부동성의 경계를 넘어선다. 현존하는 세계가 갑자기 기이한 것(카이저의 용어를 쓴다면)이 되는 것은, 진정 친근한 세계, 황금시대의 세계, 카니발적 황금의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간다. 현존하는 세계는 재생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파괴된다. 세계는 죽어감과 동시에 살아난다. 그로테스크에 있어 모든 존재의 상대성은 항상 명랑하며, 언제나 변화와 교체의 기쁨이 스며있다. 이 명랑함과 즐거움이 최저한으로 줄어드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16. 기시 유스케, <검은 집> 中
무섭고, 미웠어. 죽여 버리고 싶었어. 그래도, 그렇다고 그 사람을 괴물 취급하면, 내가 지는 거라고 생각해.‘ 메구미는 부모님에 대해 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 평범 한 사람이야. 문제는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병적인 페시미즘이야. 인생과 세계에 대해 안고 있는, 끝없는 절망.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는 모든 것에 자신의 어두운 절망을 투영하고 있어. 인간의 선의와 향상심이 좋은 세상을 만들 가능성 같은 건 하나도 인정하려 들질 않아. (중략)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존재, 모든 사건이 필요 이상으로 악으로 넘치는 것처럼 느껴질 거야.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교묘한 트릭을 쓰게 되는 거지. 배신당해도 상처받지 않도록, 그 어떤 것에도 유대감을 갖거나 애착을 느끼지 않아. 그리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 사악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여차하면 마음을 다칠 일 없이 무시할 수 있게 하는 거지. 사회에 진짜 해로운 독을 흘려보내는 건 알기 쉬운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도, 오히려 그런, 그냥 보면 평범한 사람들인 것 같아.
17. 기리노 나쓰오, <OUT> 中
"우선 관절별로 자르고 난 다음에, 다시 되도록 작게 자르는 게 좋지 않을까?“ 요시에가 식칼이 잘 갈렸는지 확인하면서 대답한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사코는 겐지의 울대뼈 아래 있는 경추 간격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있는 힘껏 식칼을 넣었다. 뼈에 바로 닿아서, 엄청난 양의 걸쭉하고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비닐 시트가 피바다로 변했다. 마사코는 당황하며 배수구 그물을 빼냈다. 점도 높은 피가 소용돌이치며 흘러들어간다. 이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제 쓴 목목물과 겐지의 피가 하수도에서 합쳐진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사코의 장갑 끝이 순식간에 들러붙어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요시에가 호스를 찾아 수도꼭지에 끼우고 피를 흘려보내 주었다. 하지만 좁은 목욕탕은 피비린내로 가득차서 숨이 꽉 막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