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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와이북클럽05, 《등대로》

월간와이북클럽05, 《등대로》

소개

버지니아 울프는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등대로>는 그가 이야기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소재 삼아 쓰여졌습니다. 프로이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고대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 오이디푸스를 통해 가족 관계와 남성성의 발달 과정에 대한 생각을 체계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어린 소년은 아버지의 질투와 분노를 불러일으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머니의 사랑을 요구하고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들 제임스와 그의 부모 사이에도 비슷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제임스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울프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무의식에 작용에 주목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서사와 줄거리를 나열하는 대신, 그 말과 행동의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울프는 각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개인이 자신의 경험에서 의미를 찾고자하는 시도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울프는 개인이 자신의 인식을 일관된 삶의 형태로 정렬시키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고자 노력합니다. 형이상학 철학자인 램지 씨는 이론이나 연역 추론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적 합리론자를 대표합니다. 가족, 친구, 사회 질서의 신성함에 헌신하는 램지 부인은 자신의 경험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합니다. 젊은 예술가 릴리는 한 순간의 진실을 캔버스에 담아 보존하기를 바라며 예술을 사용합니다.

<등대로>는 이렇듯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끝까지 읽었다면 본문을 읽기 전에 이런 질문에 한 번 답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았을까요? 여러분들은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으셨나요?

램지 부인

이 심오한 정적 속에서 솟아오르는 이 모든 것은 이제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연기처럼, 위로 솟아오르는 증기처럼 그들을 안전하게 함께 붙들면서 거기 머무는 듯 보였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었고,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온통 그들 주위에 있었다. 그녀는 … 영원에 참가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이미 그날 오후에 한 번 다른 어떤 것에 대해 그렇게 느꼈었다. 모든 것에 일관성과 안정성이 있었다. 흐르고, 날아가고, 환영 같은 것들의 표면 속에서 뭔가가 루비처럼 불변하며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반사광으로 물결치는 창문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오늘 밤 또다시 그녀는 이미 오늘 한 번 느꼈던 평화와 휴식의 감정을 가졌다. 그러한 순간들에서 그 후로 영원히 남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것이 남을 것이라고.

울프는 램지 부부를 통해 각 성별이 가진 특징을 더 크게 부각시키면서 이를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 작품 속에서 램지부인은 친절하고 관용적인 여성일 뿐만 아니라 보호자로서 등장합니다. 그녀는 막내아들 제임스가 내일 등대에 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그녀는 날씨가 좋지 않아 등대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램지 씨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임스에게 항해가 가능할 거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해줍니다. 이러한 행동은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는 필연적으로 무너질 기대를 높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 세상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늘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하고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녀는 그러한 순간들을 가능한 한 보존하고 보호하고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례하고 막무가네인 사람들에게조차 친절을 베풉니다. 그녀는 어거스터스 카마이클에게 무엇인가 사다줄지를 묻고, 또 삐딱한 태도를 가진 찰스 탠슬리의 무례한 행동들을 참아냅니다.

특히, 램지 부인은 남성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이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녀는 여성들이 모든 남성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남성은 국가를 통치하고 경제를 관리하는 부담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취약하고 그들에겐 지속적인 안심이 필요하며, 이는 여성이 제공할 수 있고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녀가 전통적인 성역할에 갇혀있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지만, 여기서는 램지 부인의 힘에 더욱 주목해야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그녀는 복종하는 여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힘을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램지 부인의 마음에는 "고통과 죽음과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 그 어떤 이성도, 질서도, 저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쐐기 형태의 어둠의 핵심"에서만 그녀는 자기 자신이 되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행복이란 예외 없이 덧없고 일시적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온실 수리에는 50파운드가 들 것이다"와 같은 일상적 불안들은 그녀의 평화와 고독을 깨뜨리고 현실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러나 죽음과 걱정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그녀에게 완전한 어떤 순간을 더욱 소중한 것으로 만듭니다. 고통과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감각이 그녀로 하여금 그러한 행복의 순간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램지 부인은 램지 씨만큼 알파벳을 많이 외우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남편을 능가했습니다. 램지 씨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너무 빠져서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상태에 머물게 되는 반면에 그녀는 세상의 '배신'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무슨 말을 하는 대신 양말을 든 채로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면서 미소 짓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가 한마디도 하진 않았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 세상 그 무엇도 이 행복과 비할 수는 없다고 혼자 생각을 하면서). ”그래요, 당신이 맞았어요. 내일은 비가 올 거예요.“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또 승리했던 것이다.

1부 '창문'이 끝날 때 램지 씨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램지 부인은 결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직접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남편의 욕구를 능숙하게 충족시킵니다. 이것은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램지 부인의 힘을 보여줍니다. 시간과 전쟁의 폐허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일시적일지라도 하나됨을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릴리와 다른 등장인물들은 램지 부인의 죽음 이후 이러한 통합을 갈구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램지 씨

램지 씨는 램지 부인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인물입니다. 램지 부인은 인내심 있고 친절하며 사교적이지만, 램지 씨는 성미가 급하고 이기적이며 무례한 경향이 있습니다. 작중에선 그를 "칼처럼 날렵하고 칼날처럼 좁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그의 존재감과 성격의 날카로움(그리고 폭력성)을 동시에 암시합니다. 소설 내내 램지 씨는 아내와 심지어 손님들에게도 자신에 대한 동정을 갈구합니다. 램지 씨는 자신이 이룬 것이 사라지고 잊혀질까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어린 아들 제임스의 희망을 꺾고 램지 부인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선언하도록 강요합니다.

램지 씨가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낭송하는 시의 구절은 테니슨의 "경기병 여단의 돌격"에서 따온 것입니다. 600명의 병사들이 죽음을 향해 용감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담은 이 시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납니다.

When can their glory fade?
그 영광이 그 언제 잊히랴?

O the wild charge they made!
그들의 맹렬한 돌격을 보아라!

All the world wondered.
온 세상을 놀라게 한

Honor the charge they made!
경기병대의 돌격에 영광 있으라!

Honor the Light Brigade,
영광스러운 경기병여단,

Noble six hundred!
고귀한 육백 명이여!

불멸에 대한 명상인 이 시는 램지 씨의 격동적인 마음의 상태와 자신의 업적이 후대에 기억될지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램지 씨는 타협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불안정한 지식인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오로지 언어로만 세상을 알기 때문에 테니슨의 시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고 이를 해소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시를 통해 그의 업적과 용맹함이 철학에 대한 공헌의 형태로 남기를 바라며 "영광"과 "돌격"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결국 영원은 존재하지 않으며 돌 하나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처럼 영향력 있는 인물보다 오래 간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위로를 받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와 그 중요성을 확인해주기를 바라는 욕구에 빠집니다. 그는 아내에게 동정과 이해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신의 인식을 어떻게 확립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그 지식의 범위와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램지 씨가 자신의 생각의 견고함을 의심하는 모습은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관점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울프의 서술 방식이 주는 효과 중 하나는 객관적인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의 현실이 주관적인 인식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줍니다.

릴리 브리스코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그녀와 램지 부인을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통일성이며, 명판에 새긴 비문들도, 인간에게 알려진 어떤 언어로 쓰일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니라 친밀함 그 자체라고, 이 친밀함이 바로 지식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램지 부인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릴리 브로스코는 일반적인 성 역할의 규정을 따르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릴리는 독신 여성으로서 새로운 사회 질서를 대표하며 등장인물들로부터 여러가지 편견을 불러 일으킵니다. 램지 부인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인생을 완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찰스 탠슬리는 여성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릴리는 이러한 관념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적인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릴리는 과거 당연시 여겨졌던 관습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삶과 예술 사이에 평행선을 만들어냅니다. 그녀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닌 자신에게 실제처럼 보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그림 속에 보존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원칙에 따라 삶을 살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램지 부부 못지 않은 큰 투쟁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울프는 릴리와 램지 부인을 대비시키며 전통적인 역할을 하는 여성과 규정된 성 역할의 영역을 벗어난 여성 간의 관계를 부각시킵니다. 램지 부인은 아내와 어머니라는 전통적인 역할을 맡으며 그로 인한 고통과 불안을 받아들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인식하며 자신의 힘을 인식합니다. 릴리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지만 계속해서 자기 의심에 시달리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작품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느낍니다. 울프는 이 여성들의 관계를 통해 남성 사회가 여성의 예술적 비전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과 그러한 관계의 내적 친밀감과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잔디밭에 서서 캔버스에 장면의 구성 요소를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하는 릴리는 램지 부부와 그들이 대표하는 세계를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릴리는 램지 씨와 같은 불안을 느끼며 자신의 작품도 잊혀질까 두려워 "차라리 그림을 보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며 절망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램지 부인과 마찬가리조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램지 부부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이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릴리의 생각은 많은 변화를 겪으며 결국에는 자신의 비전을 달성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을 방해하는 불안을 극복하는 예술가로 거듭납니다. 작품의 말미에서 릴리는 램지 부인에게서 배운 모든 것을 실천으로 옮깁니다. 릴리는 자신이 존경하는 램지 부인을 본받아 빛의 변화, 만의 풍경 등 주변의 일시적인 재료로 아름답고 오래 지속되는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그녀의 예술적 성취는 마침내 그녀가 램지 씨와 그가 대표하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영역과 하나가 되었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더 큰 완성을 이루어냅니다.

맺음

”비가 올 거야“ 하고 그의 아버지가 말하는 것을 그는 기억했다. ”너희들은 등대에 갈 수 없을 거야.“ 그 때 은빛 안개처럼 보이는 탑이었던 등대는 저녁이 되면 갑자기 부드럽게 노란 눈을 떴다. 지금은… 제임스는 등대를 바라보았다. 그는 파도에 하얗게 씻긴 바위들과 황량하게 똑바로 선 탑을 볼 수 있었다. 탑에는 흑백의 줄이 그어져 있었고, 탑 안의 창문들도 보였다. 심지어는 바위 위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빨래까지 볼 수 있었다. 그래, 저것이 등대였단 말인가? 아니, 다른 것도 등대였다. 그 무엇도 단순히 한 가지는 아니었으니까. 다른 것도 등대였다.

등대에 대한 제임스의 깨달음은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하는 핵심인 사물의 모순적인 심리적, 서사적 구조에 관한 통찰입니다. 등대는 인간의 의식의 주관적인 본질에 대하여 고찰하도록 합니다. 제임스에게 등대는 어린 시절의 환상의 장소였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삭막하고 진부한, 그저 평범한 구조물에 불과합니다. 릴리가 램지 부인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50쌍의 눈이 필요하다는 한 것처럼, 제임스는 세상이 그렇게 축소하고 단순화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울프는 세계를 다양하고 경쟁적인 의식의 집합으로 이해해야만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끝났다"는 릴리의 선언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성서적 표현을 통해 그 순간에 힘을 부여합니다. 이 힘은 등대와 아버지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제임스의 능력과도 유사하지만 작품 전체를 고려했을 때 그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램지 씨, 램지 부인, 릴리 브리스코는 혼돈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각기 다른 방법을 시도합니다. 철학자인 램지 씨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을 상징한다고 믿는 인간 사유의 끝, 그 (애매한) 문자 Z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램지 부인은 자녀들의 결혼식을 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납니다. 삶을 질서화하려는 지적, 사회적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갑니다. 오직 예술적 질서에 대한 릴리의 시도만이 우아하고 힘 있게 성공합니다. 릴리는 예술을 통해 서로 상충되는 분리된 대상들을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 ‘비전’을 갖게 됩니다. 이 종합적인 시각은 조각난 현실과 등장인물 간의 경쟁적인 세계관을 포용합니다. 이를 통해 그녀의 그림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영원히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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