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월간와이북클럽03, 『댈러웨이 부인』

소개
<댈러웨이 부인>은 일반적인 형식의 소설은 아닙니다. 이 작품은 댈러웨이 부인을 중심으로 그녀의 주변인물과 과거와 현재를 모두 한데 엮은 작품입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6월의 어느 날에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준비하고 개최한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이 단순한 스토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어렸을 때, 피터는 그녀에게 ‘완벽한 안주인’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는 이 말을 충동적으로 내뱉었지만 이 책을 끝까지 보았다면 그 예언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클라리사는 결국 남편을 위해 성공적인 파티를 열어주는 좋은 아내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표면적인 것일 뿐입니다. 여성은 결코 아내, 어머니, 안주인이 아니며 우리는 인간이 한 단어로 정의할 수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 세상에 얼마나 극히 일부분만 드러나는지 알고 있고, 그래서 우리 자신을 그렇게 편협하게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수많은 감정들을 느끼지만 이것들을 항상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감정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생각들 또한 수없이 쌓여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이 복잡한 내면으로부터 비롯되는 희미한 윤곽일 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에서 관심을 기울인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 영국 상류층 정치가의 귀부인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차차 알아갈 것입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 방식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이야기의 표면에 머무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인물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가게 합니다. 우리는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들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그들이 되어 그들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듯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인간 의식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클라리사 댈러웨이
매력적인 여인이라고 스크로프 퍼비스는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새 같은 느낌, 푸른 빛을 띤 초록색 새, 경쾌하고 생기가 넘치는 어치새 같은 느낌이 있었다.비록 그녀가 오십이 넘었고, 아픈 뒤로 흰머리가 많이 생겼지만 말이다. 그곳에 그녀는 횃대에 걸터앉은 새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를 전혀 보지 못한 채, 길을 건너려 기다리며, 곧추서 있었다.
그녀는 벡스버러 부인처럼 주름진 가죽 같은 피부와 아름다운 눈을 가진 검은 피부의 여인이고 싶었다. 그녀는 벡스버러 부인처럼 진득하고 당당했으면 했다. 다소 몸집이 크고, 남자처럼 정치에 관심이 있고, 시골에 집을 가지고 있고, 아주 위엄 있고, 아주 신실하였으면 헀다.
이 책의 초반에는 그녀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이 때 두 가지 관점이 교차하는데 그녀의 이웃이 그녀를 바라보는 관점과, 클라리사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퍼비스는 그녀를 새같다고 표현하고, 클라리사는 자신을 벡스버러 부인과 비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클라리사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매력적이거나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클라리사의 시선은 바쁘게 오갑니다. 그녀의 기분 또한 수시로 변화합니다. 보통 소설을 구성하는 ‘인물’이 대개 스토리의 전달을 위해 평면적인 인물상을 가진다는 생각하면 이러한 방식은 일반적인 구성은 아니지만, 사실 현실에서의 우리들도 클라리사에 못지않게 변덕스럽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실제로 늘 일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종종 현실 시간을 무시하고 주관적인 시간을 따릅니다. 울프는 클라리사를 통해 이러한 인간의 의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클라리사의 독백을 들으면서 그녀의 성격에 대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됩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댈러웨이 부인'으로서 만족할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클라리사가 여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인 남편에 대한 결정, 즉 댈러웨이 부인이 되기로 한 이유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매일매일 같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권리, 다소 독립된 부분이 있어야만 했다. 그것을 리차드는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 또한 그에게 주었다. 하지만 피터와는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했다. 모든 것을 자세히 의논해야 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다. 게다가 작은 정원의 분수가에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그와 헤어져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파괴되었을 것이다.
클라리사가 피터를 미워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말이 잘 통했고 많은 것들을 토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았습니다. 클라리사는 이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위험하다는 말은 클라리사가 살아가는 행위를 묘사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만약 클라리사가 피터를 선택했다면 클라리사는 균형을 잃고 자신을 파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클라리사는 피터 대신 리차드를 선택했습니다. 그가 그녀의 삶에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그녀 앞에 있는 이것, 여기, 현재였다. 택시를 타고 있는 저 뚱뚱한 숙녀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까, 본드 거리를 향해 걸어가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필연적으로 완전히 죽는다는 것이 문제가 될까. 그녀 없이도 이 모든 것들이 틀림없이 계속될 것이었다. 그녀가 그 사실에 분개하나? 오히려 죽음이 완전히 끝을 낸다고 믿는 것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러나 런던의 거리에서 사물이 밀리고 미는 흐름 속, 여기, 저기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는 살아남고, 피터도 살아남아, 서로서로의 존재 속에서 살리라.
그녀는 현재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본성상 반응이 빠르고 즉흥적이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물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의 깊은 아름다움을 감지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감성은 그녀를 위험에 빠트립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엄격히 통제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각을 느슨하게 허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만 입니다. 그녀는 런던은 소음, 색채, 냄새, 사람들 속에서 걸으며 음미하지만 그녀의 내면의 소용돌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히 숨깁니다. 그녀는 마음이 균형을 잃는 것을 조심했습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복잡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아"가 변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똑똑한 여성입니다. 리차드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엘리자베스와 있을 때와는 조금 다르며 휴와 함께 있을 때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달라집니다.
종달새처럼 솟구쳐 올랐다! 곤두박질쳐 떨어져 내렸다! 지금도 그녀가 들을 수 있는 돌쩌귀의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프랑스식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부어톤에서 활짝 열린 대기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그녀에게는 언제나 그런 것 같았다. 아침의 대기는 얼마나 신선하고, 얼마나 고요했던지. 물론 지금보다 훨씬 더 고요했었지. 이른 아침의 대기였어. 파도의 철썩임 같기도 하고, 파도의 입맞춤 같기도 했지. 오싹하면서 섬뜩했지만 엄숙했다. 거기 열린 창가에 서면 예전에도 그랬듯이,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일이 막 일어나려 하는 것을 느꼈다. 꽃들을 바라보고, 나무에 연기가 휘감고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그리고 까마귀가 날아올랐다가 곤두박질쳐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꽃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의 기분은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그녀는 시끄러운 런던의 거리를 걷다가 조용한 공원에 들어섰고, 다시 소음과 색채 속으로 들어가 평화롭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꽃집으로 들어섭니다. 클라리사는 현재에 대해, 과거에 대해, 그리고 다시 현재에 대해 생각합니다. 앞뒤가 뒤바뀌고 소음과 고요가 오락가락하는 이 기분을 ‘파도의 입맞춤’과 같다고 말합니다. 울프는 클라리사를 통해 감각에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면서도 겉치레에 신경을 쓰고 또 상당히 현실적인 ‘여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냅니다.
클라리사와 셉티머스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는 클라리사의 더블(Double)입니다. 이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울프는 자신의 일기장에 "제정신과 미친 사람이 보는 세상"을 그리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이 책은 사실 클라리사만의 이야기기 아닌 클라리사와 셉티머스 두 사람의 두 이야기가 나란히 놓여있는 소설입니다. 클라리사와 셉티머스라는 두 인물은 소설에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지만, 그들이 영혼에 부여하는 가치로 인해 서로 연결됩니다.
클라리사와 셉티머스 모두 극도로 예민하며, 특히 영혼의 독립성, 즉 한 사람의 개성과 본질을 구성하는 부분에 아주 민감합니다. 댈러웨이 부인의 생활은 안정적이며, 가장 사적인 생각과 감정들은 다른 사람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혼자만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습니다. 남편과 딸, 친구들 사이에서 아내이자 엄마, 안주인으로 살아가지만 누구에게도 완전히 편안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댈러웨이 부인의 영혼의 깊은 곳을 알지 못합니다. 댈러웨이 부인의 영혼은 개인 정원과도 같은 장소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고요 속에서 쉼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녀가 핌 양과 함께 꽃들을 고르면서 이 단지에서 저 단지 앞으로 다가가면서, 얼마나 어리석은가, 얼마나 바보같은가를 자신에게 더욱더 조용히 말했다. 마치 이 아름다움, 이 향기, 이 색깔, 그리고 핌 양이 자신을 좋아하고 믿는 것이 한 줄기 물결과 같아서 그것을 자신 위로 흐르게 하여 그 증오, 그 괴물을 이겨내려, 이 모든 것을 극복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물결은 그녀를 위로 위로 들어올렸다. 그때 - 아! 바깥 거리에서 한 방의 총소리!
세상이 채찍을 들었다. 어디에 그 채찍을 내리칠까? 모든 것이 정지되어 갔다. 자동차 엔진의 진동이 불규칙하게 온몸을 구석구석 두드리는 맥박 소리같이 들렸다. (중략) 그리고 모든 것이 눈앞에서 하나의 중심으로 이렇게 서서히 모여드는 것은 그를 공포에 떨게 했다. 마치 어떤 무서운 것이 거의 표면에까지 떠올라 확 타오르려고 위협하고 있었다. 길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나로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조롱당하고 손가락질받고 있지 않은가. 이유가 있어서 그가 거기에 짓눌린 채 인도에 못박혀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무슨 이유일까?
클라리사는 자동차의 소음을 듣고 총소리를 연상하였습니다. 작중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로, 전쟁이 가져온 폭력의 여파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입니다. 총소리도 위협적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이는 당대의 현실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반면에 셉티머스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로 끝없이 후퇴합니다. 그는 자동차의 소리를 채찍이 내리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살짝 놀란 정도지만 셉티머스는 잔뜩 겁에 질립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클라리사와 셉티머스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혼란함을 느끼지만 클라리사는 두려움을 통제합니다. 반면 셉티머스의 통제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혼란에 빠집니다. 클라리사의 눈에 비친 런던은 익숙하고 안심이 되지만 셉티머스에게는 모든 것이 그를 향한 위협입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느정도는 공통된 것들을 공유하지만, 거기에도 항상 개인적인 해석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울프는 이러한 개별적인 복잡성을 수시로 상기시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가장 평범한 일에서도 비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각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자동차 소리는 시끄러운 소음일 뿐이지만, 런던 거리에 있는 개개인에게는 저마다 다른 다른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소음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그 다음에는 중요해 보이는 자동차가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물론 이 차에 중요한 사람이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차는 그저 차일 뿐이고, 심지어 여왕도 그 안에 있다면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신비에 대한 상상은 군중을 평범한 존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자동차는 각 사람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합니다. 영국 왕족과 같은 거리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마주했기 때문에 모두가 각기 다른 존재로 느껴집니다. 하늘에 글씨를 쓰는 비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은 차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고, 지금은 하늘에 쓰인 글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두 가지 모두 대중을 사로잡고 그들의 내면에 세계를 창조합니다.
모든 사람이 셉티머스를 미친 사람으로 보고있지는 않습니다. 홈즈 의사는 셉티머스의 문제가 습관적이고 강박적인 자기 성찰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크레지아는 그 말을 듣고 하늘에 쓰여진 글귀로 셉티머스의 관심을 끌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셉티머스가 미쳤다는 것을 압니다. 그의 내면의 광기와 슬픈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세계에서 시간은 분산되고, 늘어나고, 길어지고, 느려집니다. 연기 모양은 셉티머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감각의 파편 뿐입니다.
느티나무가 부풀었다가는 사그라지고, 모든 이파리들이 빛나며 부풀었다가는 사그라지고, 색깔도 푸른색에서 텅 빈 파도 같은 초록색으로 옅어졌다가는 진해지면서 일으키는 흥분 때문에 그는 미쳤을 것이다. 마치 말 머리에 꽂힌 깃털 장식처럼, 숙녀들의 머리에 꽂힌 깃털 장식처럼 나무들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부풀어 올랐다가는 아주 위엄있게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는 미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싶었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셉티머스가 경험하는 시각과 소리의 움직임처럼 연기가 시들었다가 녹고, 소리가 모였다가 갈라지고, 느릅나무 잎에 비치는 빛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등 파도처럼 움직입니다. 파도는 클라리사의 감정을 묘사하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거대한 무의식, 파도의 리듬은 셉티머스의 무의식을 향한 사이렌의 노래와도 같고, 그의 이성의 잔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미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애원합니다. 클라리사처럼 셉티머스도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정도는 달라도 그들의 방식은 비슷합니다.
클라리사와 피터
유니폼을 입고 총을 멘 소년들이 눈을 앞에 고정시킨 채 행진해갔다. 그들의 팔은 꼿꼿했으며, 얼굴에는 동상을 받치는 단에 써진 영국에 대한 의무, 감사, 충성, 사랑을 칭송하는 글귀의 글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중략) 지금 그들은 육체적 쾌락이나 나날의 삶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핀즈베리 보도에서 텅 빈 무덤에 이르기까지 들고 가는 화환 때문에 엄숙한 모습이었다. (중략)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의 마음 깊숙한 곳이 늪처럼 평평해지며, 세 개의 위대한 감정들이 그를 당황케 했다. 이해, 드넓은 박애정신, 그리고 마지마그로 마치 다른 감정들의 결과인 듯한 억누를 수 없는 황홀한 기쁨. 그의 두뇌 속에서 다른 손이 줄을 잡아당기고 셔터를 움직여, 자신은 그 일과 전혀 상관이 없지만, 끝없는 길이 펼쳐지는 입구에 서 있었고, 선택만 하면 멋대로 헤맬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처럼 젊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탈출했다! 완전히 자유로웠다 - 습관이 무너질 때에 흔히 그렇듯이 말이다. 그런 때에 마음은 보호받지 않는 불꽃처럼 고개숙여 굽히며 자신을 잡는 것으로부터 막 날아가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최근 수년 간에 이렇게 젊게 느껴본 적이 없어! 피터는 생각했다. 다름아닌 자신의 옛 모습에서 탈출하여 문밖으로 도망쳐 나가는 어린아이 같았다. 뛰어 나가면서 그 아이는 나이 든 유모가 엉뚱한 창문에서 자신을 찾는 것을 보았다.
피터는 상당히 자유분방한 사람입니다. 그는 클라리사 앞에서 주머니칼을 만지작거리고 손톱을 다듬으며 유부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클라리사가 ‘귀부인’인 것과는 정반대로 그는 ‘신사’가 아닙니다. 그는 사회적 규율을 거의 지키지 않습니다. 그는 군인을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들이 규율에 따르는 것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규율은 클라리사와 비슷합니다. 그들과 클라리사는 규칙을 따르지만 피터의 본성은 규칙에 얽매이기를 거부합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녀에게 몰려왔다. 만약에 내가 그와 결혼했더라면 이 들뜬 기분은 하루 내내 나의 것이었을 텐데!
“애가 내 딸 엘리자베스예요” - 그런 유의 말투 - 왜 단순히 “엘리자베스예요”가 아닌가? - 대부분의 엄마들처럼, 있는 그대로가 아니게 일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얼마나 그녀를 비난했던가! 그들은 얼마나 언쟁을 벌였던가! 그녀가 수상과 결혼해서 계단 맨 위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녀를 완벽한 안주인이라고 부르며(그 때문에 그녀는 자기 침실에서 울었다), 완벽한 안주인의 소질이 있다고 했다.
사실 클라리사도 피터와 같은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그녀는 피터와 함께한다면 얼마나 매혹적일지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통제합니다. 그녀가 그녀 스스로에게 보이는 절제가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녀는 영혼의 독립성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유롭기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피터는 그녀의 그런 성품을 꼬집습니다. 피터는 그녀가 있는 그대로 솔직하지 못하고 가식을 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으론 자유를 갈망하면서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을 어리석게 여깁니다. 그는 화를 내며 그녀를 ‘완벽한 안주인’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런 환상들은 끊임없이 떠올라 현실의 일들과 보조를 맞추고, 그것들에 앞서 얼굴을 내밀었다. 때때로 외로운 여행자를 압도하여 그에게서 이승에 대한 감각이나 돌아가고픈 소망을 앗아가고, 대신 일상의 평온함을 주었다. 마치 이 모든 삶의 열기가 단순함 그 자체인 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길, 아마 나는 램프 불빛 곁으로, 거실로 결코 돌아가지 못할지 몰라. 결코 내 책을 끝맺지 못할지도, 다시는 파이프 재도 털지 못할지도, 터너 부인에게 치워달라는 전화도 못할지 몰라. 차라리 곧장 이 위대한 형상에게로 계속 걸어가게 내버려둬. 그녀는 머리를 휙 들어 나를 자신의 흐름 위에 태우고는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바람에 날려서 사라지게 내버려두리라.
자유로워보이는 피터도 사실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는 규율에 얽메이지 않지만 외로움에 갇혀있습니다. 그는 어디에서나 늘 주변인이었습니다. 그는 규율에 복종하는 영국 신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클라리사를 좋아하지만 그녀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클라리사는 피터 대신 믿음직한 리차드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지만, 동시에 돌아갈 장소 또한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외로운 방랑자입니다.
오 년 만에 영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생긴 재미난 일은, 어쨌든 처음 며칠은 세상 일들이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두드러져보인다는 것이었다. (중략) 이처럼 느낌에 민감한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그에게 파멸을 가져온 원인이었다. 그의 나이에도 여전히, 소년 심지어 소녀처럼, 이렇게 기분이 번갈아가며 변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좋은 날이었다가 불쾌한 날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행복해하기도 하고 지저분한 여자를 보고는 완전히 불행에 빠지기도 했다.
현실을 보는 눈에는 늘 환상이 비춰집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정확하지 않고, 주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클라리사는 꽃을 사러 나갔을 때 피터나 자신에 대해 "나는 이것이다, 나는 저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물론 그녀가 이 것을 엄격하게 지키지는 못하지만, 이 통찰은 진리에 가깝습니다. 피터도 이와 매우 유사한 것을 깨닫습니다.
대중에 대한 깊은 배려, 영국 제국,관세 개혁, 지배계급 정신, 이런 것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 몸에도 점점 배었다. 그녀는 남편보다 두 배나 많은 지력 을 가졌지만 남편의 눈을 통하여 사물들을 보아야만 했다 - 결혼 생활이 가져오는 비극 중의 하나였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 졌지만 그녀는 언제나 리차드를 인용해야만 했다. 마치 아침에 모닝 포스트지를 보면 리차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파티들은 모두 리차드, 혹은 그녀가 생각하는 그를 위한 것이었다(리차드를 공평하게 평하자면 그는 노포크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행복했으 리라).
피터가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와 모호함이 대부분의 인간 관계에 필연적으로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피터와 클라리사 모두 클라리사의 영혼의 죽음에 대해 각자 고민하고 결정했습니다. 클라리사는 피터를 버리고 리차드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라고 확신했고, 피터는 지금도 클라리사가 리차드 댈러웨이와 결혼한 순간 클라리사의 영혼의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클라리사와 피터는 언어적 소통 없이도 서로 대화할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영혼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생각이 정반대였습니다.
그러나 피터의 '사랑'과 클라리사의 '안정감'에도 불구하고 둘은 여전히 외롭습니다. 클라리사는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켰고, 사랑에 빠진 피터는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피터의 시선에 셉티머스와 루크레지아가 들어옵니다. 그들은 공원에서 피터와 함께 있으며 클라리사와 피터처럼 둘 다 서로 고립된 느낌을 받습니다. 클라리사가 피터의 사회적 무능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루크레치아도 셉티머스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루크레지아는 남편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클라리사는 피터의 행동에 반대하고 루크레지아는 셉티머스의 행동에 반대하지만, 피터는 앞으로도 살아갈 것인 반면에 셉티머스는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결국에는 그의 삶을 버릴 것입니다.
물론 피터는 루크레지아와 셉티머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루크레지아 남편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혼돈을 결코 알지 못합니다. 피터는 루크레지아와 셉티머스를 보며 젊은이들이 자신보다 더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전혀 청춘이 아니었고 그들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그런 반면에 피터와 샐리는 서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매우 자유롭고 솔직했습니다.
클라리사와 리차드
리차드 댈러웨이가 반쯤 생각하고 있는 노포크에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꽃잎들을 날려버리고, 물을 뒤섞어놓았으며, 꽃 피어있는 잔디를 물결지게 했다. 짚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침 수고를 잠으로 날려보내려고 울다리 아래에 자리를 잡고는 초록색 풀잎들로 된 커튼을 제쳤다. 하늘을 보려고 떨리는 노란 구륜앵초의 둥근 꽃들을 치웠다. 파랗고 변함없는 햇살이 작열하는 여름 하늘이었다.
피터는 리차드가 런던보다 노퍽에서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는 피터의 직감은 정확했고, 리차드는 노퍽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차드는 막연히 성실한 정치가가 아닙니다. 그는 바람의 느낌, 하늘의 색, 풀의 움직임에 민감합니다. 이 점에서 그는 클라리사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클라리사와 달리 그는 저항하지 않습니다. 클라리사는 지나친 개입을 완강히 거부하는 반면, 리차드는 모든 일에 그녀보다 더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리차드의 유연성은 클라리사의 요구와 결혼 생활의 성질에 대한 개념을 묵인하는 방식에서 볼 수 있으며, 그는 타고난 상냥함 때문에 휴의 변덕에도 어울려줍니다.
이 모든 것이 리차드 댈러웨이에게는 아주 이상해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클라리사에게 한 번도 선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삼 년 전에 준 팔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패작이었다. 그녀는 한 번도 그것을 차지 않았다. 그녀가 그것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그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무엇인가를 들고 들어가고 싶었다. 꽃은 어떨까? 그래 꽃이야. 그는 귀금속을 고르는 자신의 선별력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어떤 존엄함이 있었다. 외톨이로서의 고독,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큰 간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은 존중해야 한다고, 남편이 문을 여는 것을 바라보면서, 클라리사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그것과 갈라설 수가 없었다. 혹은 남편의 의지를 거역하고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도 없었다. 자신의 독립성이든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든지 - 무엇이든지 여하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 - 를 잃지 않고는 말이다.
보석 가게에서 휴가 보석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장면에서 우리는 리차드와 피터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터는 낭만적이고 꿈을 따르지만 리차드는 모험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클라리사를 위한 선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온통 미안함과 두려움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는 클라리사에게 선물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클라리사를 위한 보석을 고르지 못합니다. 대신 그는 꽃을 선택합니다. 리차드가 꽃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무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과 클라리사 사이의 어떤 약속을 깨지 않습니다. 그는 클라리사의 개인적인 영역을 존중합니다. 클라리사는 피터와 결혼하지 않았고, 리차드는 클라리사를 위해 너무 개인적인 선물을 사지 않습니다. 그는 그녀가 피터를 사랑하기를 주저했던 것처럼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주저합니다. 리차드는 클라리사와 결혼하면서 피터를 잃게 되고, 클라리사 역시 리차드를 잃게 됩니다. 클라리사는 리차드에게 도망쳤고, 그녀의 두려움의 일부를 그에게 전염시켰습니다. 리차드는 문제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아내와 일정한 행동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클라리사와 파티
파티에서 소설에 등장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입니다. 장면은 파티 안팎을 오가며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곧이어 그의 이야기를 듣는 다른 사람으로, 또 그 다음 사람으로 넘어갑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인상을 본 다음 내면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종류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울프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계속해서 무대 뒤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무대 뒤에서 파티는 시작됩니다. 파티는 하녀들이 분주하고 움직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부엌에서 두루 이야기가 퍼졌다. 엘리자베스가 아주 아름답게 보인다고 어깨 너머로 루시는 말했다.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댈러웨이 부인이 준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제니는 엘리자베스의 폭스테리어를 챙겨야했다. 그 개는 물어서 가두어놓았는데 무언가 먹고 싶어하리라고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당신이 오셔서 얼마나 반가운지요!” 클라리사가 말했다. 이 말을 누구에게나 했다. 당신이 오셔서 아주 반갑다고! 그녀는 최악이었다 - 호들갑스럽고 거짓되었다. 온 게 잘못이었다. 집에 머물며 책이나 읽었어야 했다고 피터 월쉬는 생각했다. 음악홀에 갔어야만 했어. 집에 있어야 했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엉망이 되려 하고 있었다. 완전한 실패라고 클라리사는 뼛속까지 느꼈다. 그때 다정한 랙샘경은 거기에 서서 아내가 버킹엄 궁전 정원에서 열린 파티에서 감기가 걸려 오지 못했다고 사과를 하였다. 저기 저 구석에서 피터가 그녀를 비난하는 것을 곁눈으로 힐끔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왜 그녀는 이런 일을 하는 거지? 왜 정점을 찾아내고는 격정에 푹 싸여 서 있는 거지? 어쨌거나 그녀를 다 소멸시킬 수도 있으리라! 그녀를 재가 되게 태우리라! (중략) 단지 피터가 와서 구석에 서 있을 뿐인데 그녀가 이런 상태에 빠지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그녀 자신을 보게 하였고, 과장하게 하였다. 어리석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는 왜 왔단 말인가, 단지 비난하려고?
엘리자베스는 속으로는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는 차분하게 사랑스러움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클라리사는 파티가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해합니다. 그래서 클라리사는 멍청이처럼 서있는 엘리 핸더슨에게 불만을 터트립니다. 엘리는 클라리사만큼이나 불안하고 당황한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브루턴 부인은 당당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오찬에서 파티를 통해 그녀가 클라리사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파티를 가장 즐기는 것 같은 사람은 리차드 댈러웨이입니다. 그는 초대받은 게스트들과 쉽게 대화를 나누고 엘리의 공포를 덜어주며, 피터 월쉬를 발견하고 그와 대화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그는 아내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파티를 즐깁니다. 클라리사는 피터의 눈치를 봅니다. 그녀는 자신을 층계 꼭대기에 박힌 말뚝처럼 느낍니다.
물론 클라리사는 말뚝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녀가 자초한 일입니다. 그녀는 평생동안 자신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샐리 시튼을 보며 그 사실을 더욱 철저하게 깨닫게 됩니다. 샐리는 여전히 피터와 많이 닮았습니다. 둘 다 원하지 않는다면 규칙을 따르지 않죠. 샐리는 초대장도 없이 클라리사의 파티에 찾아옵니다. 피터는 오후 일찍 클라리사에게 불시에 들이닥칩니다. 둘 다 충동적인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샐리는 클라리사가 자수성가한 남자와 결혼해 아들을 다섯이나 낳은 것에 대해 반대한다고 확신합니다. 마찬가지로 피터도 클라리사가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여전히 클라리사에게 매료되어 있고, 클라리사도 여전히 두 사람에게 매료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울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초상화가 아닌 스케치로 대답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인간이 혼합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재와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각자가 경험한 개인적인 생각과 기억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의 눈에는 같은 인간이라도 또 다른 인상으로 보여집니다. 클라리사 댈러웨이를 일반적인 소설에 등장하는 성격이 뚜렷한 인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클라리사에 대한 묘사와 생각의 파편들은 아주 느슨하게 맞물려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유효한 것입니다. 이 작품을 명확한 그림이 아닌 일종의 스케치로서 바라보면 단순하고 알기 쉬운 작품들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다차원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갈게요.” 피터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잠깐 동안 그대로 앉아있었다. 이 두려움이 뭐지? 이 황홀함은 또 무얼까? 그는 혼자서 생각했다. 나를 이상한 흥분으로 가득 채우는 이것은 무엇일까? 클라리사로군,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소설은 클라리사가 피터에게 다가오면서 끝납니다.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피터와 함께 클라리사 댈러웨이를 관찰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그 모습에서 댈러웨이 부인의 신비로움과 다양성, 풍요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하고자 하지만 클라리사 댈러웨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마다 보고 들은 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아왔으며, 그녀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와도 같은 혼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누구일까요? 피터의 기억 속의 호숫가에서 함께 대화하던 소녀? 스크로프 퍼비스가 본 꼿꼿이 서있는 새와 같은 여인? 도리스 킬먼이 본 허영심 많고 감정이 없는 귀부인? 옥탑방의 은둔자? 드레스를 수선하며 피터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우는 백발의 여인? 샐리 시튼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한 소녀? 라일락과 장미의 달콤한 냄새를 깊게 들이키는 꽃집 손님? 하녀에게 관대한 부인?
그 모두가 클라리사 댈러웨이입니다.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클라리사 댈러웨이’ 입니다.
맺음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할 당시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을 다루겠다고 하며 이들을 “공존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와 같은 양극단에 존재하는 요소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것이 논리적인 대립이나 모순이 존재하더라도 연속성을 유지합니다. 울프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그러한 인간 정신의 특성을 글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었습니다.
뜨개질(knitting)이라고 로 표현되는 그녀의 방식은 실과 실을 인위적으로 엮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 사이의 차이를 없애고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개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뜨개질에서 실 한 가닥 한 가닥이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며 전체 패턴에 기여하는 것처럼요. 인위적으로 선을 엮어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면서 각 선이 전체의 일부이면서도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녀의 뜨개질은 서로 다름이 그 본질을 잃지 않고 공존할 수 있으며, 다양성을 무너트리지 않고 통일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세계는 혼란스럽고 난해해보일 수 있지만 훨씬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