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월간와이북클럽 『단순한 열정』 후기

서문
<단순한 열정>은 작가 아니 에르노의 아주 내면적이면서 동시에 강렬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아니는 한 남자와 가졌던 열렬한 관계를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아니의 간결한 서술을 통해 우리를 그녀의 감정의 여행에 동참시킵니다. 이 여행에서 아니는 그녀의 열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이 책에서 아니는 사랑과 욕망의 본질을 사색하며 자신의 동기와 결점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작가가 어떠한 로맨틱한 표현이나 감성적인 묘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니는 자신의 불타는 감정의 이야기를 가장 차가운 문장으로 써내려갑니다. 그녀의 글은 깔끔하고 정확하지만, 그 이면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감정적인 깊이가 있습니다.
<단순한 열정>은 이러한 감정을 깊이 파헤치는, 인간 심리에 관해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책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함께 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 여성에게는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어요. 그건 바로 여성은 ‘감성적’ 이라는 것이에요.
-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성적일까요? 아니는 자신의 감정을 차가운 문장으로 썼다고 하는데 아니는 이성적인 것일까요? 감성적인 것일까요? 우리가 얘기하는 감성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에 유의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본문
사랑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11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 ‘다하다’ 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 -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p.19
내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상상의 이야기에 자유롭게 전념하지 못하도록 나를 방해하는 것들에 맞설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p.35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나날들이 되풀이되겠지. 나는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는 걸 예감하면서도,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p.39
<단순한 열정>은 작가의 고백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에 대한 고백인데 그것은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듯한 열렬하고도 불타는 듯한 사랑입니다. 아니는 그 과정이 결코 쉽운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큰 고통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는 그 느낌에 매달리기 위해 더욱 집중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러한 ‘느낌’을 위해 온통 매달려보았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 살면서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매진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항상 재보는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단순한 열정>을 읽으면서 한 번 무언가에 매달려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저는 어렸을 때 보았던 드라마가 너무 기억이 나요. 드라마가 시작할 때 음악이 나오는데 그 피아노 선율이 너무 좋은 거에요. 어떻게 저런 음악이 있을 수 있지하고 생각하면서 피아노의 매력에 빠져버렸어요. 당장 이것들을 배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게 괴롭기도 했어요. 나도 꼭 나중에 피아노를 배워서 그런 소리를 내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 저는 평소에도 무언가에 잘 빠지는 편이에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빠지면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오히려 그러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하지만 그래서 아니의 행동들이 너무 이해가 갔어요. 예전에 연애할 때가 생각이 나구요.
- 사실 책을 읽으면서 종종 아니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남자는 아니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서요.
사람들의 시선
나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라도 내 속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적잖이 노력해야 했다.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p.20
내가 감정에 겨워 “난 요즘 열정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가 그 여자처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까 두려웠다.
p.20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고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고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p.22
아니는 단지 사랑에 푹 빠져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종종 그녀에 대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사랑‘에 대한 것을 퍼블릭에서 꺼냈을 때 사람들이 거리를 두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도 그런 취급을 받게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자식들 또한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지만, 그녀는 자식들이 ‘어머니’의 그런 행동을 탐탁치 않아 한다는 것 또한 감지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 의견을 말하거나 나서지 못했었던 경험이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꿈이 있지는 않으신지요?
- <단순한 열정>에서는 아니가 사랑을 하면서 고통을 함께 느끼잖아요. 무언가에 몰두하려고 해도 그 고통이 무서워서 중간에 그만두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단순한 열정은 이러한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열정을 다하고 싶지만 어느 순간 멈춰서게 되거든요. 여성들은 사회 안에 있으면서 그런 식으로 꺾이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 만약 우리 엄마가 누군가와 사랑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어요. 사실 저는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응원할 것 같아요. 엄마가 자유롭게 자기 인생을 살면 좋겠어서요.
이별
처음에는 새벽 두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온몸이 아팠다.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고통은 도처에 있었다. 차라리 방에 강도라도 들어와 나를 죽여주었으면 싶었다. 낮 동안에는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노력했다.
p.45
이 기간 동안 나의 생각, 나의 행동들은 모두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현재를, 행복을 향해 열려있던 과거로 바꾸어놓고 싶었다.
p.45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p.52
아니는 이 시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꿈같이 아름다웠던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을 내던졌던 만큼 상실은 마음에 큰 구멍을 남깁니다. 아니는 아주 사사로운 것 하나에까지 집착하며 그 시절을 글로써 재현해나가고, 만들어진 그 시간에 다시금 푹 빠지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췄으면 이대로 더이상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잊혀감
어느덧 4월이다. 이제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A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중략) 그 사람이 예전만큼 그렇게 내 일상을 집요하게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p.57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열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p.59
그날 저녁 홀연히 왔다 간 그 남자는 예전에 그가 여기 있을 때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사람, 내 글 속의 그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 남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p.64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p.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p.67
그 시간에 머무르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샌가 열정은 사그라듭니다. 자신이 그렇게 했었다는 것조차 잘 믿기질 않고 어쩐지 부끄럽기도 합니다. 우연한 기회로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만 그 때와 같은 열정이 되살아나지는 않습니다. 아니는 글을 쓰면서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정리해나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냅니다.
아니가 바란 것은 부귀영화도, 안락함도, 고통의 회피도 아니었습니다. 아니는 그저 온전히 자신이 자기 자신일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제 열정은 사그라들었고, 그 때와 같은 것이 다시 되살아날 일은 없겠지만, 그녀는 그것을 후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 시절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고, 그 기억이 있음으로 인해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단순한 열정’입니다. 그녀의 열정은 순수했고, 거침없었으며, 고통을 동반했지만, 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을 하면서 그녀 자신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의 불륜은 드라마에 나오는 사건과 음모로 뒤섞인 아침드라마가 아닙니다. 이 책은 순수한 사랑의 멜로드라마이며, 그러한 사랑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서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것이 불륜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불륜은 그녀에게 아내로서,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역할에 메이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이기를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니의 말대로 그것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나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 우리가 아는 사랑은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아니는 사랑이 단순하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주고 받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기대하는 것이라면, 아니의 사랑은 일방적이에요. 사랑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죠. 사랑 받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목적인 것과는 아주 다른 삶이에요.
- 여기서 나오는 단순함을 다르게 표현하면 순수함인 것 같아요. 정제를 거쳐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상태이고자 하는 거죠. 하지만 그 불순물들을 걸러내는 작업은 마치 연금술이 순수한 금을 얻기 위해 덩어리를 끓여내듯, 자신을 걸러내고 끓여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요. 아니의 사랑은 그것을 해내기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해요.
- 이 책을 보면서 자신이 선택하여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 열정이 꼭 사랑만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무언가에 열정을 쏟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맺음
온전히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것은 때때로 사회적 책임과 충돌합니다. 이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죠. 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방법이 있을겁니다.
가치가 충돌할 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 믿는 것, 그리고 행복과 충족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면, 그것과 사회적 요구 사이의 긴장을 다룰 수 있게 될겁니다.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 사이에 경계를 두거나, 사회적 규범 내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을겁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다소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고자 하는 것과 사회적 역할과 책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때때로는 타협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유지할 수 있다면,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