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2024년 1월 26일 발제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메데이아’는 잔인한 악녀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그녀는 코르키스의 공주로, 뛰어난 마법사이자 치유사였다. 황금양털을 찾아온 이아손에게 반한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신하여 그에게 양털을 넘겨주고 함께 도망친다. 그녀는 아버지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동생을 토막내 바다에 뿌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원수인 펠리아스를 그녀의 딸들을 속여 잔인하게 살해하고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에 호감을 가지자 배신감에 글라우케와 자신의 친아들까지 살해한다.
이처럼 인륜을 저버린 사상 최악의 악녀로 불리는 메데이아는 그 대표성 때문에 수많은 작품들에 등장하며 현대까지도 여러가지 변주가 이어지고 있다.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또한 그러한 변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메데야’는 분명 지명과 이름, 관계에서 그 ‘메데이아’와의 관계성을 암시하면서도 보여주는 모습은 2000년 이상 떨어진 그야말로 ‘다른 사람’ 이다.
메데야 또한 메데이아처럼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다. 메데야는 남편이 죽은 후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편지에서 사실 그가 그녀의 자매 알렉산드라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으며, 그녀의 딸 ’니카‘가 자기 남편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메데야에게 그들의 불륜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남편과 었고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였던 자매의 배신이었기에 그녀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에게 예정되었던 남편의 저 아이를 여동생의 유쾌하고 가벼운 몸에 넣어 주었던 운명”에 대한 원망을 뒤로하고 ’멋진 과부‘로, 모두의 어머니로 거듭난다. ‘메데이아’가 과도한 사랑과 복수로 항상 ‘파멸’을 불러왔다면 ‘메데야’는 용서하고 관용을 베품으로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바위같이‘ 시노플리 가문의 중심으로 우뚝 자리한다.
메데야는 살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사건들에 불필요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녀는 신께서는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자를 벌하는 경우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삶이란 원래 그런 성질의 것이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닥쳐온 불행은 신이 내린 벌도 아니거니와, 사탄의 놀음 또한 아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찾는 행위는 완전히 무익한 수고이다. 메데야의 지혜는 삶의 속성을 꿰뚫어보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삶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순리대로 진행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진짜 불행은 그러한 삶의 궤적을 이탈해버리는 자들이다. 가족을 떠난 사람들, 세상을 자기 손으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생명을 자기 손으로 끊는 사람들… 진짜 비극은 그런 뒤틀림 속에서 생겨난다.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마샤에게서 도스토옙스키의 모습이 엿보이는 점 또한 흥미롭다. 인간은 ‘천상의 빵’을 약속하고 떠나버린 예수를 대신해 그가 거부한 악마의 세가지 시련(돌을 빵으로 바꿔라, 절벽에서 뛰어내려라, 내 앞에 경배하라)을 받아들였다. 인간은 예수의 기대와는 달리 ’자유‘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나약해서 자유의 짐을 더어주는 대신 ‘지상의 빵’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말이다. 니카와 부토노프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인 사람들로서 백치상태인 마샤를 일깨워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마샤는 그런 현실을 한사코 거부하며 ‘유일성’을 주장한다. 결국 그녀는 어린시절의 제스쳐를 재현하며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귀류법(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고 모순을 이끌어내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 - 유일성을 부정당하는 것에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하다 끝내 창밖을 향해 스스로 몸을 던진다)을 통해 이끌어낸다.
1990년대는 구 소련이 러시아로 바뀐 이후 태어난 세대가 사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시기로 도시에 새로움과 젊음의 활력이 감돌던 그런 시기였다. 우리로 치면 MZ세대가 사회활동을 시작하여 여러 새로움과 동시에 혼란을 가져오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모두가 화려하고 현란한 도시적인 감수성에 열광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던 그런 시기였다. 울리츠카야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톨스토이적 가족이야기를 꺼내든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와 아들‘, 이념과 지성의 계보가 아닌 ’어머니와 딸‘이라는 낳음으로 이어지는 핏줄의 계보, 가족의 관계성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류의 가장 본질적인 서사의 원형을 복원해낸다. 그녀가 그려내는 것은 우라노스 · 하늘보다 앞서있던 가이아 · 땅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생명의 근원이다.
메데야
배낭 깊숙히 놓인 편지가 자기 자신을, 여동생을, 죽은 남편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그녀에게 전혀 불가능해 보였던 사실과 화해하도록 그녀를 강제하고 있었다. 결혼생활의 모든 해에 걸쳐 그녀를 신격화했던, 부분적으로는 꾸며낸 것인 그녀의 덕목들을 너무도 극찬했던 남편과 마지막 실핏줄까지 그녀에게 드러난 존재인 여동생 알렉산드라 사이의 관계가 불가능한 것은 일상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메데야가 느낀 것처럼 가장 높은 차원의 금기가 깨졌다 하지만 산드로치카의 당돌한 편지로 판단할 떄, 그 가벼운 어조로 판단할 때, 산드로치카는 이 은밀한 근친의 죄를 알아차리지조차 못했다. 단 하나, 알려져서 곤란해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바람뿐이었다… p.266
그녀는 남편에게 모욕당하고 여동생에게 배신당했다. 심지어 그녀에게 아이를 주지 않고, 그녀에게 예정되었던 남편의 아이를 여동생의 유쾌하고 가벼운 몸에 넣어준 운명 자체가 그녀에게 욕을 퍼부었다. p.267
“교회의 규율이 필요해. 만성질환자에게 주는 약 같은 거야. 내 삶의 행복은 소박하고 보기 드물게 성품이 좋았던 사람인 엄마가 내게 믿음을 가르쳐주신 거야. 엄마는 의심을 몰랐어. 내게도 사람들이 저마다 해결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는 철학적인 문제들과 무익하게 싸울 필요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어. 삶, 죽음, 선과 악의 문제들의 전통적인 기독교적 해결에 나는 만족해. 훔쳐선 안 되고 죽여선 안 돼. 악을 선으로 만들 상황이란 없는 거야. 망상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가는 것은 우리와는 전혀 무관해.” p.282
그녀는 빳빳하게 풀 먹인 홑이불을 덮고 화사한 베개를 베고 누워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오래된 말들과 순간적인 시선들과 침묵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하나로 잇고 나서 메데야는 산드로치카의 마지막 아이의 비밀이 그녀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다는 것을,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레노치카조차 알고 있었지만 온갖 수다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말을 아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레노치카가 그렇게 속이 트인 사람이었단 말인가? 자기 아이들의 반쪽 형제를 집에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았단 말인가? ’현명한 레노치카, 위대한 레노치카.‘ 메데야는 생각했다. ’그 사실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구나…‘ p.283
헌금함 위에는 유리잔이 놓여있고, 진회색 갯버들 가지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아하! 여기서도 자라는구나.” 메데야는 기뻐했다. 그녀는 4분의 1절지 두 장을 쥐고 한 장에 ‘영원한 안식을’이라 쓰고 나서 익숙한 순서에 따라 이름들을 적기 시작했다. 사제 디오니시, 사제 바르폴로메이, 하를람피, 안토니다, 게오르기, 마그달리나… 살아 있는 다른 가족의 이름은 다른 종이에 ‘건강을…’이라는 말 아래에 적었다. 바로 이곳에서 커다랗고 반듯한 철자로 친지들의 이름을 쓰며, 그녀는 늘 똑같은 상태를 체험했다. 그녀가 강을 따라 흘러가는 것 같은데, 그녀의 앞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흩어져서 그녀의 형제자매들과 그들의 젊고 어린 아이들이 있고, 뒤에는 그와 같은 부채꼴이지만 가벼운 잔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훨씬 더 긴 모양으로 그녀의 죽은 부모와 조부들, 한마디로 그녀가 이름을 알고 있고, 그 이름이 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라져간 모든 조상이 있다. 그녀는 살아 있고 죽은 이 모든 무수한 사람들을 기억 속에 간직하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름 하나하나 주의깊게 쓰며, 얼굴을, 모습을, 만약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취향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고 있었다. p.285
메데야는 자신이 당한 쓰라린 모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그들은 다정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꿈과 추억과 언뜻 스치는 생각에 대해 말할 것이었고, 새 아이의 탄생과 새 요리법에 대해 알려줄 것이었다. p.287
메데야는 알도나가 영원한 모성의 노예 상태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저녁 늦게 그녀와 함께 앉아 그녀가 마련해둔 마가목 열매 보드카나 사과 보드카를 마시고 탄식도 했으면 싶었다. “아이고, 피곤해 죽겠네…” 푸념도 하고, 울기도 했으면 싶었다. 그러면 그때 메데야는 말없이 두꺼운 잔에 몇 번 입술을 대고 나서, 고생과 불행은 ‘무슨 죄를 지어서?‘라는 질문이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으로 바뀌도록 주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이해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면 그때 죄인을 찾고 자신을 변호하려는, 자기는 죄가 없음에 대한 증거를 얻어내려는 무익한 시도들이 끝나고, 잔혹하고 동정심 없는 사람들이 고안한 죄와 벌의 무게를 맞추는 법이 무너진다는 것을 이해시켜주고 싶었다. 신에게는 죄 없는 어린아이를 덮치는 그런 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 메데야는 그녀에게 조용하고 사소한 말들로 정의롭지 못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의 속성 때문에 일어나는 삶의 다양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줄 것이다. 전선에서 죽은, 레노치카의 가장 성공적인 아이 알렉산드르를 추억할 것이다. 익사한 파블리크도, 갓 태어나 메데야의 어머니와 함께 떠난 어린 계집아이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시간이 흘러 알도나의 모든 것이 어쩌면 저절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시간이 필요한 방향으로 흐르고 굳은살같이 단단한 습관이 몸에 박혀서… p.302
이반 이사예비치는 자매 두 사람을 모두 의인으로 여기지만, 산드로치카는 늙을 때까지 시들지 않는 미소를 짓고 남편의 생각을 바로잡아준다. “우리 중 의인은 한 사람이었어…” 나는 남편을 통해 이 가족의 일원이 되어, 내 아이들이 그리스인의 피, 메데야의 피를 조금 지니고 있어서 몹시 기쁘다. 지금까지도 마을에 메데야의 후손들이 오곤 한다. 러시아인들, 리투아니아인들, 그루지아인들, 고려인들이다. 내 남편은 내년에 돈이 생기면, 아이티 태생의 흑인 미국인인 큰며느리가 낳은 어린 손녀를 여기 데려오리라 꿈꾸고 있다. 메데야의 가족에 속한다는 것, 안면조차 없는 수많은 구성원이 일어난 것과 일어나지 않은 것, 그리고 도래할 것의 아득한 풍경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런 대가족에 속한다는 것, 이건 놀랍도록 즐거운 느낌이다. p.388
마샤
잠자리에서 공고해지는 결혼생활이 있고, 부엌에서, 식탁용 나이프와 달걀흰자 거품기가 내는 작은 음악 소리에 맞춰 피어나는 결혼생활이 있다. 쉴새없이 집을 수리하며, 싸게 파는 다차 지을 목재, 못, 건유, 유리솜 등을 덥석 몰아서 사는 건축가 부부도 있다. 다른 결혼생활들은 영감 가득한 추문들 위에서 지탱된다. 마샤와 알리크의 결혼생활은 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함께한 지 구년째였는데도 매일 저녁 그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하루 동안 일어난 중요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프를 식게 만들고 커틀릿을 태웠다. p.320
”아니야, 아니야, 불가능해!“ ”그래, 왜 불가능한데? 왜?“ ”설명할 수 없는데, 아마 이런 걸 거야. 모두가 모두와 만날 수 있어. 의무적인 관계는 없어. 대충 고르면 되고, 모두가 서로를 대신할 수 있어. 하지만 여기에는, 난 알아, 유일성이 있어. 여타 모든 것은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유일성…“ ”나의 천사,” 니카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너한테는 그런 것 같지 않아? 경우마다 다 유일한 거야, 내 말 믿어. 부토노프는 탁월한 정부야. 그건 센티미터로, 분으로, 시간으로, 피 속의 호르몬 양으로 측정되는 거야. 그건 그저 변수들이라고! 그는 좋은 조건을 가졌어. 그게 다야! 네 알리크는 휼륭한 사람이야. 지혜롭고 재능 있어. 부토노프는 알리크 발바닥에도 못 미치지만, 알리크는 널 그저…” “입 닥쳐!” 마샤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입 닥치라고! 네 부토노프는 그놈의 센티미터 몽땅 챙겨서 가져가!” 마샤가 무슨 까닭인지 방금 니카에게 되돌아간 스카프를 거울 밑에서 낚아채고는 뛰쳐나가버렸다. 니카는 그녀를 막지 않았다. 어디 미쳐 날뛰어보라지. 사람이 백치같은 환상에 빠졌으면 벗어나야 한다. 결국 부토노프는 올바르게 말한 것이다. 사실로 받아들여. 그런데 이건… 니카는 짜증을 내며 마샤의 시를 떠올렸다. “은혜 위에 쌓이는 은혜같이, 가늠할 수 없는 것도 받아들여라…” 그러니까 받아들여. 사실로 받아들이라고… p.349
유일한 것, 독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기만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따분하고 졸렬하다. 우리는 자유로운가 아닌가? 이 수치스럽고 추잡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가? p.357
이 공격들 속에는 옮길 수 없지만 의미가 아주 명확한 날카로운 대화가 들어 있었다. 그들 둘 다 그녀를 조롱하며, 그녀가 하찮다고, 그들이 갖춘 대가의 경지에 도무지 범접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놀라며 공격 하나하나를 다 물리치고 있었다.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그녀가 손에 쥔 무기가 점점 더 지혜롭고 정확해져감을 발견했다. 실제로 이 싸움은 다른 무엇보다도 펜싱을 연상시켰다. 오른쪽에 있던 자가 더 악랄하고 더 조롱조였지만 물러나고 있었다. 두번째 적도 물러갔다… 그들이 없어졌다. 그녀의 승리였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통곡하며 선생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선생이 그녀에게 말했다. “무서워 마라. 아무도 우리한테 해코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마샤는 그녀 자신의 것이었던 끔찍한 나약함 때문에 더 세차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승리를 안긴 모든 지적인 힘은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빌린 것, 선생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샤는 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천사가 그녀에게 열어주는 영역들과 공간들을 통해, 인간의 것이 아닌 자유와 지상의 것이 아닌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어나는 모든 새로움과 상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토노프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체험하는 과도한 행복이 같은 뿌리에서 생겨나는 같은 유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그 점에 대해 천사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는 질문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나타날 때, 그녀는 기쁨에 젖어 그의 의지에 애써 복종했다. 대신 그가 사라졌을 때는 아주 안 좋아졌다. 어떤 떄는 며칠 동안이나 사라지기도 했다. 영혼의 암흑이, 어두운 공허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부토노프를 향한 숨막히는 독백이 천사가 오는 행복에 즉각 지불해야 하는 대가인 것 같았다. “변모의 빛을 우리는 견디기 어렵네. 그러나 백배는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이어지는 모든 나날 텅 빈 원반의 검은 심연이네…“ p.366-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