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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톡톡 페스타, 그 이후

기후 톡톡 페스타, 그 이후

2024년 8월 13일 하루 동안, 부천 아트벙커39에서 기후 톡톡 페스타가 개최되었다. 기후 톡톡 페스타는 기후위기의 막연한 불안감에 대항해 기후위기 너머의 가능성의 세계를 그려보고자, 부천YWCA 청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주최한 기후 축제였다. 부천 아트벙커39의 1층 전시홀에서 ‘기후위기, 그 너머의 장소’라는 청년 기후 전시를 진행했고, 2층 스튜디오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나누어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페스타를 열었다.

다음은, 각각 전시와 대화프로그램이 진행되었던 현장의 사진들이다.

많은 시민들이 전시에 방문해 작품들을 진지하게 관람하고 공감을 표현해 주었다. 부천문화 재단과 아트벙커39 측에서도 전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대화 프로그램 또한 알차고 즐거운 구성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기후 톡톡 페스타를 준비하는 과정 속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기후 행사가 참여자에게 환상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였다. 이상과 실천 사이의 괴리, 변화에 도달하는 과정의 지난함은 YWCA 청년 활동가로서 그리고 사회학도로서 여러 번 실감하게 되는 커다란 한계점이었다. 사회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장’과 ‘상징폭력’에 관한 이론을 통해, 실천에(praxis)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illusio’ 환상. ‘오’와 같은 감탄사가 떠오르며 감상에 깊이 몰입하게 되는 경험, 신비한 재미와 즐거움, 다시 말해 환상의 체험은 개개인의 현실에서 실천을 이끌어 내는 커다란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따라서, 기후 톡톡 페스타 속에 환상을 제공하는 장치를 두어, 참여자가 기후위기라는 거대하고 어려운 문제에 의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러한, 기후 톡톡 페스타는 기후위기 너머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세계를 모색하는 기후행사임과 동시에, 환상의 체험과 경험적 실천 사이의 장력을 실험해보는 하나의 사회 실험이 되었다.

환상을 제공하기 위한 대표적인 장치는 전시였다. ‘기후위기 그 너머의 장소’는 위기의 세계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세계를 재조직해내기 위하여 장소에 주목한다. 또한,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해석한 ‘앙겔루스 노부스’의 존재를 빌려와, 날아가는 천사를 지면위로 끌어 당겨옴으로써, 위험 장소 속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 대한 내러티브를(narrative) 시작한다. 이로써, <새로운 천사>, <시작>, <순환>, <오래된 미래>, <개안>, <아늑한 갤러리>, 영상 작품이 전시된 벙커 홀은 가능성의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전시에 참여한 관객은 한 명의 산책자가 되어, 작품 사이 사이를 산책하며 ‘위험 장소’와 다른 운명을 지니는 새로운 장소의 모습을 상상한다. 산책을 마친 후, 빈백 위에 머무르며 성장주의의 감각에서 잠시 벗어나, 생동하고 번영하는 곳으로써의 장소의 본질을 기억해보고 생태 친화적 감각을 사유해본다. 이를 통해, 위험 장소를 가능성의 장소로 재조직해내는 것에 동참한다.

대화 프로그램에서는 참여자들이 직접 기후위기 너머의 세계를 구상해보며,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조직해낼 수 있게끔 유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기후위기의 세계에 대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기후위기에 관한 언어를 새롭게 정립해보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내야 하는 변화들을 상상하고 적어보는 활동들을 준비했다.

기후 톡톡 페스타가 끝이 났고, 실험적인 기후행사에서 본래 의도한 바가 달성되었는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필자는 기후 톡톡 페스타는 참여자들에게 환상을 제공했는가?, 환상의 체험은 경험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의 질문들에 아직까지 명료한 답을 내릴 수 없다. 기후 톡톡 페스타는 기후위기 너머의 세계를 그려보며, 기후위기 너머로의 가능성을 찾아나선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만, 환상에 대한 체험이 이상과 실천 사이를 끌어당기는 장력이 된다는 것을 찾아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환상이(illusio) 경험적 실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여전히 궁금한 주제이다. 앞으로 다른 실험들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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